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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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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경제·행정)

이희급(李㠻伋)

내용
-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이동면 난음리
시대
1553~1597

상세내용

1553년(명종 8년)에 남해군 이동면 난양리(蘭陽里) 조금촌에서 장수 이씨 이인충(李仁忠)과 진주 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중사(中思), 호는 난계(蘭溪), 본관은 장천(長川)이며,  장천부원군(長川府院君) 임간(林幹)의 후손으로, 선조(宣祖)조에 문관(文官)으로 함양군수 경상도사(慶尙道事)로 있었으며, 임진왜란 시 이충무공과 같이 종군하여, 진도·벽파정에서 적을 물리치고 순절하니, 녹선무(錄宣武) 이등훈(二等勳)을 녹권(錄券)하여, 난곡사에 모셨다.

24세였던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3등 21위로 합격하였고, 6년이 지나 30세가 되던 1582년(선조 15)에도 식년시에 병과 23위로 합격하였다. 급제 이후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 저작(著作), 박사(博士)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1592년 음력 6월 28일에 개령 현감(開寧縣監)으로 재직 중 적이 나타나자 도망가 숨는 탓에 빈축을 사기도 했다. 1594년에 함양군수를 부임했으나, 결국 함양이 함락되고 1597년 경상도사에 임명된 후 의병을 이끌며 왜적을 격퇴하는 데에 공을 쌓았고 이후 벽파진 해전 당시 이순신을 도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동면 난음에서 출생 난계서원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충신으로 동국여지승람 환여송람 진주진관지 경상지리지 남해 읍지 등 명관 및 충신편에 기록되고 우리 고장의 위대한 향현이다. 

사후 이희급의 공을 기려 이희급의 신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난음리(蘭陰里)에 위치한 난곡사(蘭谷祠)에 배향되어 있다.

정경운(鄭慶雲)이 쓴 《고대일록》에 이희급이 전쟁 중 함양군수로 지내면서 수모를 겪은 기록이 일부 있다. 1594년 음력 10월 17일에 이희급이 군관(軍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찰사(體察使) 윤두수가 군수에게 전령하여 전주로 불러올렸는데 윤두수의 언사가 몹시 패악하고 오만스러웠다고 전하며, 1595년 음력 2월 6일에는 명나라 사람에게 곤욕을 당하여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또 1595년 음력 5월 11일에는 명나라 장수 유정이 이희급의 멱살을 잡고서 향소(鄕所)에서 마구 구타하였으며, 1595년 음력 10월 29일에는 중국인에게 맞아서 왼쪽 뺨과 손목이 몹시 상했고, 1596년 음력 3월 15일에는 무슨 일인지 난타(亂打)당한 상처로 몸을 굴신(屈伸)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희급은 사후 1605년에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는데 그때 당시 받은 공신녹권이 지금도 남아있다. 해당 공신녹권은 2017년 7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