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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문학

정을병 (鄭乙炳)(보도자료)

상세내용

▶ 정을병(鄭乙炳, 1934년 7월 5일 ~ 2009년 2월 18일)은 대한민국 소설가로 본관은 진양(晉陽), 호는 난정(蘭丁)·일민(逸民)이다.

 

이동면 출신. 한국신학대학을 중퇴하고 국도신문 기자로 입사했다. 1959년 <자유공론>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62년 단편 <부도(不渡)>와 <반(反)모랄>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73년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외장을 맡았다가 1974년 1월 7일 문인 61명의 개헌지지성명을 이끌어내는 등의 일로 ‘문인․지식인 간첩단 5인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고초를 당했다.

대표작에 단편 <육조지>와 인동덩쿨, 일어서는 풀 등이 있고, 그밖에 <까토의 자유>, <받아들인다는 문제> 등 많은 문제작을 발표했다. 40여 편의 장편과 150여 편의 단편, 11권의 에세이집 등을 남겼다.

 

 

▶ 한국의 솔제니친 정을병 작가의 통곡

 

한국의 솔제니친으로 불리기도 하는 우리나라 고발문학의 선구자 정을병 작가가 간암으로 2009년 2월 생을 마감했다.

"앵강바다가 보이는 고향 언덕에 작은 문학비 하나 세워 달라"던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아직도 허공을 맴돌 뿐이다.

1993년 <월간중앙> 5월호 기고문 중에 남해사람을 펌훼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하여 고향에서 망언규탄대회와 화형식을 통해 철저히 버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3년 남해신문 김광석 기자는 사설을 통해 정을병 작가가 고향사람들에게 사과의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면 포용하고 용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그 즈음 필자 역시 남해를 찾아온 정을병 작가를 만나 역사인식에 빚은 오류에 대해서는 사과하기를 권했다. 그 역시 "남해군민 전체를 펌훼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일부 권력과 물질지향적인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 내용이었지만 받아들이는 분들께서 그렇게 생각했다면 사과할 뜻도 있다"며 "오래된 이야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4년 한국소설가협회 작가와 남해문인들이 정을병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남면 출신인 백시종 소설가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이동면 금평마을에 문학비를 세우고자 했지만 남해군과의 협의과정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그래서 2016년 3월 그가 45년간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안산공원 느티나무길 입구에 문학비가 들어서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해가 낳은 최고의 소설가이자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문학작품을 통해 드러내어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려고 저항했던 정을병, 그의 문학적 성과가 남해군에서 송두리째 매장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문화예술적 자산을 버린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 십 년이 벌써 세 번이나 지나고 또 다른 십년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용서하고 화해하는 가슴 넓은 남해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남해의 문화예술 자산을 키워냈으면 좋겠다.

스탈린 시대 수용소의 실상을 파헤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담담하게 호소했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작가 정을병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1974년 문인간첩단사건으로 정을병 작가와 함께 고초를 겪었던 임헌영 평론가는 "정을병 작가의 고향 남해도 그를 멋지게 부활시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정을병 작가는 고향사랑이 대단했다. 전국자생란보존회장 시절 많은 자생란을 남해에 심었고, 한국문인협회, 소설가협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남해에서 소설가협회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가 내뱉은 몇 마디 말은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다시 그를 불러낼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을병 작가는 운명을 앞두고 좋을 때도 슬플 때도 그 원천적인 외로움은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진리는 어두운 곳, 불편한 곳, 위보다는 아래에서, 앞에서 보다는 뒤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용서받고 싶다. 감사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병상에서 삶에 대한 독백을 적어 놓고 떠났다.

그가 용서받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것은 단지 남해에서의 일이 아닌 그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술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떠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용서와 함께 문학작품 속에 담겨진 사상과 사회개혁을 위한 의지에 대한 고뇌에 대한 감사함도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3년 4월, 류지앵 남해도서관장은 '남해의 작가 정을병 다시 읽다'라는 인문학포럼을 열었다. 필자는 '정을병의 삶과 문학'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정현태 시인의 제안으로 '정을병 작가 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필자는 백시종 소설가와 함께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추대받았다.

전국의 많은 분들께서 동참하여 문학비 건립에 동력이 모아지고 있다. 넘치는 활력으로 사회의 제반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던 우리 고향 남해 출신 정을병 작가가 소망했던 '작은 문학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 더 큰 마음으로 남해의 자산을 하나 더 만들어 나가는 데 따스한 손길 부탁하면서 문학은 문학으로써 존재할 때 가치를 빛낼 수 있음을 가슴 속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