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 진주고보를 졸업한 후 징용을 피해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다. 법조인을 꿈꿨지만 가족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는 걸 반대했다. 결국 굳은 마음을 먹고
고려대학교 법과에 진학했고, 고시 공부에 매진해 고려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한 해인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1950년 검사로 임용돼 대전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차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전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서울지검장, 광주고검장을 거쳐, 1980년 대검 차장을 끝으로 물러날 때까지 30년간 검찰에 몸담았다. 1981년 변호사 개업을 한 후에는 총 1만 5천 회가 넘는 무료변론에 나섰다.
1989년 고려대 교우회장을 역임하였고, 검찰 동우회장도 역임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 외에 한국사찰의 편액에 관한 연구로 서예학 전공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구름을 헤치고 세계가 부르짖는 인권', '억울타 난 죄없어(무죄변론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2003년에는 법률신문에 회고록을 연재해 화제를 모았다. 취미도 다양해서 수석 수집과 소형 영화 촬영 등에 능했다. 좌우명은 '활법제민(活法齊民)'으로 “변호사 본분인 사회정의란 것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고 변론을 통해서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3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사업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