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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학문(교육·학자)

전기수

내용
-
출처
남해의근현대문학인 및 경남신문
출생지
경남 거창군
시대
1923 ~ 2003

상세내용

1928년 경남 거창군에서 출생했다. 소는 일천(一泉), 한샘이다. 1959년 《현대문학》에 「봄비」, 「코스모스」, 「아기와 나는」이 천료되어 등단했다. 대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 후, 고등학교 교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부산, 경남 일원의 초, 중, 고교에 근속하였으며 김해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지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진해지부장, 김해지부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기수의 시는 주로 향토의 자연을 소재로 하는데, 전통적, 민족적 서정의 세계를 바탕으로 자연미를 탐구한다. 불교 및 노장의 무위사상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대표시로 「밤바람에게」가 있다. 시집으로 『기원』(문학사, 1963), 『잔설』(청운출판사, 1966), 『봄편지』(현대문학사, 1971), 『남해도』(현대문학사, 1981), 『밤바람에게』(월간문학사, 1983), 『전기수 시선』(시로, 1985), 『속 사절의 노래』(문협출판사, 1993), 『아림 숲에서』(명상, 1998), 『산하』(경남, 1999)가 있다. 수필집으로는 『산골의 봄』(1975), 『전기수 산문집』(경남, 2003)이 있다. 1981년 제4회 한국현대시인상, 1983년 제22회 경상남도문화상 문학부문, 1989년 제1회 경남문학상, 1994년 국민훈장 동박장을 수상했다.

 

 

 

▶ 학력

 

대졸자격 검정고시 합격 후 고등학교 교원 검정고시 합격

 

 

▶ 경력

 

김해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 남해수산고등학교 교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 한국문인협회 진해지부장 / 김해지부장

2001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 내가 바라는 한세상 여기 있어라

 

지독히 순수에 살았다.
‘순수 이미지의 극명한 조형과 날카로운 언어감각으로 한국 현대시사에 뚜렷한 개성과 문체성을 기록한 향토시인’ 故전기수(全基洙 1928~2002).

1959년 등단 이후. 40년간 순수 자연 서정시만 고집해온 그에겐 ‘자연시인’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닌다.

보다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쫓는 현대 시단의 흐름에 역주했기에 당시 대중과 언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으나.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그의 유별난 고집에 눈길이 간다.

그의 작품 흔적을 더듬어 보고자 경남문학관을 찾았다.
작고문인 코너. 호리한 얼굴형에 강단진 눈빛을 가진 그의 사진 뒤로. 8권의 시집. 3권의 산문집이 보관돼있다.

시집을 훑어본다. 모든 시집이 세로쓰기 형식이다. 최근 시집까지 줄곧 같은 형식을 고집해온 시인의 ‘꼬장꼬장한 신념’이 연상된다.
내용도 한결같이 ‘자연’과 ‘순수’를 노래했다.

첫 시집 ‘신제’(1963)부터 마지막 시집 ‘사계의 노래(1993)’까지 꼬박 30년 세월. 강산이 세번 바뀔 동안 같은 소재로 동질의 시세계를 유지해온 그의 고집에 기가 질린다.

그에게 자연은 자유로운 놀이터요. 그리운 한 가슴 쉬게하는 넓은 가슴을 가진 어머니요. 늘 꿈꾸는 이상향 같은 존재다.
교편을 잡았던 그는 전직이 잦았다.

이는 그의 흔적을 찾아야 하는 기자에게는 곤란한 일이나.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을 꿈꾸던 그에게는 제법 괜찮은 환경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한참을 고민 끝에 그의 후기 인생 20년을 보낸 김해와. 5년간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시집 ‘남해도’를 잉태시킨 남해를 찾기로 했다.

 

 

▶ 시인.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

 

거창 산골 소년 출신인 그는 바다를 접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늘 바다는 그에게 그리움의 존재였으리.
그러던 어느날 남해수산고등학교(현 남해수산해양고등학교)로 난 발령은 그에게 바다와의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리라.

산문집을 통해 그도 이미 이러한 고백을 수차례 남겨놓았다.
그의 열정적 사랑의 흔적인 네번째 시집 ‘남해도’를 손에 들고 남해로 향했다.

바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바닷가를 거닐며 외로움을 달래고. 밤낚시를 하며 사색에 잠기고. 조개를 캐는 여인을 보며 인생을 생각했을 그를 떠올렸다.
그의 시에 살아 숨쉬는 생동감 넘치는 푸른 바다빛과 애잔하게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바다내음을 상상했다.

하지만 7월의 장마는 짓궂었고. 남해바다는 뿌연 안개로 몸을 감추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20년 전 그와의 사랑은 둘만 간직하고 싶다는 듯.
‘내가 바라는 한 세상은 여기 있어라/비 갠 오후의 눈부신 햇살 속/가진 것 아무 것 없는 생각으로/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걸을 때/ 구름장은 찢어져 어지러이 몰려가고/ 보리밭은 골골이 주름지어 나부끼고/ 옷자락은 이끌리어 쉼없이 펄럭거리는/ 바람이 바람이 불고 있는 곳’(우후((雨後)에 中)

아쉽지만 그가 재직했던 남해수산해양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그의 전출 기록표(1978~1982)만 확인하는 걸로 남해행 흔적찾기는 마무리지어야 했다.

 

 

▶ 광활한 김해평야. 시인을 품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 20년을 김해에서 터를 잡았다.
늘 고향 거창의 밤나무. 대나무 숲을 그리워했던 시인이 거창이 아닌 김해에 마지막 뿌리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늘 남의 집을 전전해 다니다가 우리 집을 처음 샀던게 김해였죠.”
질문에 돌아온 그의 셋째 아들 전완(49·부산진여고 교사)씨의 대답이다.

통상적으로 시인. 그것도 순수를 주창하는 시인은 능력있는 가장과는 거리가 멀다.

잦은 이사 탓도 있었지만. 무심한 경제관념에 긴 세월 남의 집 살이를 해오던 시인은 70년대 후반 김해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집에 대한 애착은 그의 집 대문에 박힌(시멘트로 떼지 못하게 발라 놓은) 명패가 대신 답한다.

그의 유택엔 아직 부인 신분남(77)씨가 살고 있었다.
그가 집에 있을땐 주로 ‘贍三祭’에 머물렀다.

성삼제란 그의 다락방 서재 이름이다. 다락방 서재의 창문으로 망정대. 봉황대. 구지봉이 보이기 때문이란다. 지인이 써준 멋드러진 문패도 문앞에 붙여 놓았다.

서재 안. 그가 머물던 시간이 여기서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고서의 특유 향이 코끝에 느껴진다. 책 꽂기 편하도록 그가 직접 짰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짙은 고동색 책장에는 수백권의 책이 빼꼭하다.

부인은 늘상 책을 쥐고 앉았고 섰고 걸어다니던 시인을 추억했다.
벽에 걸린 그의 미소짓는 사진을 바라보니 교사 시절 별명이었다는 ‘사슴’ ‘기린’이 연상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집을 나와 그가 자주 거닐었다는 집 근처 김해평야와 저수지를 찾았다.
들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 꽃 냄새를 맡고 나무를 만지고 강을 바라보는게 일상이었던 그.

지인들은 나날이 자연은 훼손되고. 순수성은 짓밟히는 세상 속에서 이를 고집하고 유지해온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모든게 사랑의 행위였고 시작을 위한 공부고 노력이었을 것이다.

“문학이 내 종교”라고 말했던 그의 다부진 눈빛과 부드러운 심성을 상상해본다.

그는 김해에서 20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김해문인협회를 만들어 이끌기도 했다. 지난 2001년 김해문협 후배 문인들이 ‘전기수의 밤-순수에 살다’라는 시낭송회를 마련해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년에 김해의 조용한 자연과 호흡하던 그는 2002년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음성 사라져/못 들을 바에야/논두렁에 앉아 오랑캐꽃이나 들여다볼까//묻어 둔 꿈의 씨앗/꿈의 씨앗 돋아난/논두렁에 앉아 오랑캐꽃이나 들여다볼까//비바람 잇대인 세월에서/명리의 티 하나 없이/논두렁에 앉아 오랑캐꽃이나 들여다 볼까’(故鄕 전문)

늘 고향의 자연을 그리워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시인은 고향을 떠난지 30여년 만에 고향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향 거창으로 돌아온 그. 묘 앞에 세워진 시비의 시다. 

 

 

▶ 시인 전기수는 누구인가

 

故전기수 시인은 1928년 거창에서 태어나 1959년 현대문학에서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순수 서정시로 일관해온 경남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가 경남뿐 아니라 현대시사에 남긴 발자취는 모두 아홉 권의 시집에 묶여진 독특한 성향의 작품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세간에 온전하게 알려진 적이 드물다. 그 이룬 바에 견주어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는 40년 시력을 건너서는 동안 고집스럽게 자연 서정시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전 시인은 1947년 9월 교육계에 투신해 1994년 정년퇴임 때까지 경남의 학교를 돌며 천직처럼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83년에는 김해문협을 만들고 회장을 맡아 이끌기도 했다.

시집 ‘기원’ ‘잔설’ ‘봄 편지’ ‘남해도’ ‘밤바람에게’ ‘전기수 시선’ ‘사절의 노래’ ‘속 사절의 노래’ ‘산하’가 있으며 수필집 ‘산골의 봄’ ‘2인 수상집’이 있다. 또 지난 5월 1975년부터 최근까지 신문과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30여점의 작품을 엮은 ‘전기수 산문집’을 출간했다. 한국현대시인상. 경남문화상. 경남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