隆熙 2년(1908) 南海 官內府主事를 역임하신 鄭民柱(1877~1934)의 9남 중 다섯번째 아들이며 석당 정재환 박사(부산 동아대학교 설립자)와 형제지간입니다.
일제강점기 남해지역 소속 아동문학인들이 펼친 아동문학의 전개과정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남해지역 아동문학은 1930년부터 1932년 사이에 집중 발표되었는데, 특히 박대영과 정윤환이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박대영은 남해흰벗사와 별도로 진주새힘사의 영향을 받아 남해새힘사를 결성하고, 정윤환은 『별나라』지를 매개로 남해소년문예사와 신진소년작가연맹을 조직하여 소년문예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쳤다. 정갑봉이 조직한 남해별나라회도 독서회를 넘어 소년문예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남해지역 아동문학인들은 『매일신보』와 『신소년』, 『별나라』의 매체를 통해 동시를 집중 발표했다. 이들은 『매일신보』의 매체 성격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동무소식’란을 통해 다른 지역 소년문예운동가들과 소통하면서 다수의 동시를 발표했다. 후기로 가면서 『신소년』과 『별나라』지로 매체를 옮겨서 동시를 발표하는 추세를 보였다.
박대영의 동시는 가난한 현실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현실인식을 보이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신소년』과 『별나라』에 발표한 동시 중에서 계급의식을 고취한 작품들은 당대 사회주의를 관념적으로 추수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정윤환은 1915년생으로 6.25전쟁 중 납북된 법조인이었다. 박대영과 마찬가지로 『매일신보』에 남해의 전승민요를 제보한 것을 계기로 다수의 동시와 아동문학 평론 1편을 발표했다. 정윤환은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노래한 동시와 비극적 사회현실을 드러낸 동시를 동시에 발표했다. 정윤환의 동시가 양면성을 지닌 만큼 소년문예운동을 포괄적으로 이해했다. 이밖에 공일동의 동시 은 193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시로 의태어를 잘 사용한 점이 돋보였으며, 윤석근과 정갑봉은 『매일신보』에서, 최종봉과 최재선은 『별나라』지에서, 비록 1-2편에 불과하지만, 문학적 재능을 보였다.
▶ 경력
정재환(동아대 창립자) 집안으로 확인됨 /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고 함
[해방 후 첫 사형폐지론을 주장했던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윤환(鄭潤煥)]
경남 남해 출신으로 일본 주오(中央)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1939년 9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1940년 1월 30일, 조선총독부 경성지방법원 사법관 시보로 출발했던 정윤환은 정부 수립 직전까지 헌법과 여러 법령의 제정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1947년, 법전기초위원회 위원, 1948년 법전편찬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어 대한민국의 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사법부의 근간이 되는 법원조직법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정 법령 제176호에 따라 의용되던 일본의 형사소송법을 폐기하고 우리의 형사소송법을 만드는 입법작업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실무가로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있었으나 헌법을 비롯하여 행정소송법과 형사법에 관련된 여러 편의 글을 남겼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글은 해방 이후 법관이 주장한 첫 사형폐지론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50년 3월에 이 글을 기고한 뒤 두 달 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납북인사 속에 포함되어 북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그의 행적은 1951년 1월부터 1956년 7월까지 평양시 교화소에 수용되었다가 1956년 8월경 함경북도 청년 탄광 노무자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만일 비극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법 역사에 큰 획을 그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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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길 없으나 아마도 인간사회와 기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사형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생명을 끊는 형벌인데 그 방법에 가지각색이 있으니 소살(燒殺), 익살(溺殺), 생매(生埋), 십자가살(十字架殺), 교수, 열살(裂殺), 독살 또는 근대에 이르러서 독가스, 전기의자 위에 올려놓고 집행하는 것도 있다. 성서의 ‘요한’전 제8장 가운데 ‘그리스도’의 말로서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는 먼저 돌을 던져라’의 문구가 있다. 돌로써 격살(擊殺)하는 것이 유태(猶太)의 사형방법인 것 같고, 소크라테스의 독살은 우리나라의 사약(賜藥)에 의한 독살과 동일한 것이다. 독일의 ‘철(鐵)의 처녀’에 의한 자살[刺殺](이것은 과연 실시한 것인지 또는 위하적(威嚇的)에 불과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프랑스의 ‘기요틴’에 의한 참수도 독지(獨持)한 것이거니와 동양에 있어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능지처참이라는 사형이 있다. 송대(宋代)부터 시작된 형으로 손과 발을 자르고 창자를 베어내고 목을 끊어 죽이는 방법인데 원곡(元曲) 가운데 제1의 비극이라는 ‘두아원 잡극(竇娥寃雜劇)’에 의하면 120도(刀)를 쳐서 죽이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참학성(慘虐性)을 띤 공상(空想)에 의하여 고안된 여러 가지의 사형방법이 있으므로 이 극악한 형벌에 대하여 ‘시적(詩的) 형벌(Poetic punishment)’이라는 격(格)에 맞지 않는 아름다운 명칭이 있다. 이 사형이 아닌 다른 징역형 같은 것은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동서고금에 감옥 속에서 초수(楚囚)의 신세를 읊은 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밖에 문학작품으로서도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옥중기(De Profundis)’, ‘골즈워디(John Galsworthy)’의 ‘정의’, ‘브류’의 ‘붉은 법복’, ‘펠리코(Silvio Pellico)’의 ‘옥중기’, 우리나라의 ‘춘향전’, 중국의 ‘성세항언(醒世恒言)’, ‘수호지(水滸志)’, ‘박안경기(拍案驚奇)’ 등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만큼 많으나 사형에 관한 것은 ‘위고’의 ‘사형수의 최후의 날’과 ‘도스토옙스키’의 ‘백치(白癡)’ 등이 유명할 뿐이다.
이것은 아마도 징역의 실정은 체험할 수 있으나 사형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형을 폐지하여야 하느냐가 오래전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고대에서는 사형은 장(杖), 태형(笞刑) 또는 속금형(贖金刑)과 같이 가장 집행하기에 간편한 형벌이기 때문에 많이 이용되어 왔었다. 행형에 대하여 근대국가와 같이 많은 비용을 들여 벽돌로 높은 감옥을 짓고 많은 간수를 두어서 일일이 월급을 줄 필요도 없었고 간단히 시가의 네거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에 사형을 집행하였으니 국비를 많이 쓰지 않고 형벌의 목적을 달(達)하고 많은 국민 앞에서 법의 위력-법을 위반하면 저러한 방법으로 죽인다는 공포를 주게 하여 질서의 유지에 많은 효과 거두어 왔었으므로 점점 이러한 간단한 방법으로 효과가 많은 사형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간통이라든지 조그마한 절도에도 사형을 집행하였고 게르만법이나 카롤리나 형법에서는 동성간(Mann mit Mann, Weib mit Weib)에 대하여서도 화형을 과하게까지 하였다. 그러니 이러한 시대에서도 종교가나 학자나 그 시대의 지도적인 이론은 사형존치론를 극력 주장하여 왔었으나 계몽철학 이래 사형폐지의 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고 인격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금일에 있어서는 남미 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의 각주, 미국의 8주가 사형을 폐지하고 사형폐지운동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영국은 사형을 정지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 인격 존중의 기반 위에 입각하는 것이며 생명은 인간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은 최고로 존귀한 것이며 그러므로 한 사람의 생명은 그 비중으로 보아서 전 지구보다는 중하다고 논하는 극단적인 논자도 있다. 이러한 논법하에서 전후 일본국의 최고재판소의 법정에서 사형선고의 비타당성(非妥當性)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일본의 판례집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거기에서 각 법관의 보족(補足) 의견이 나열되어 사형반대파와 사형긍정파의 의견이 대립되었으나 결국 사형은 참혹한 형벌이 아니니 일본국 헌법 제36조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 아니고 또 그 근본적인 이유로서는 “사형의 위하력으로써 사회악 즉 범죄의 근원을 말살시키고...... 개체(個體)에 대한 인도관념보다는 전체에 대한 인도관념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맺고 있다.
개체-각 개인의 인격의 존엄을 무시하고 전체의 복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더욱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소위 민주국가 체제하에서는 의문이 없다고 아니할 수 없는 바이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이러한 견해는 마치 ‘나치스 독일’의 전체주의적 권위국가의 사상을 대변한 자로서 유명한 ‘담’과 ‘샵스타인’과 ‘파시즘 이탈리아’의 어용학자들이 ‘권위국가의 형법에서는 사형을 폐지할 수 없다. 시형은 민족의식 가운데 살아 있으며 현대의 문화관(文化觀)과 모순되지 않고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은 알프스의 건너 쪽에서 도량(跳梁)한 개인주의 사상에 불과하다.’는 처지(處地)와 동일한 것이며 그 내용은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존중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사형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니 우리들은 전 세계의 국민이 공포에서 면하고 행복되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세계인권선언 정신에 비추어 보더라도 저 유명한 사회학자 ‘듀 프라’가 갈파한 ‘사형은 사회가 가진 권한의 남용에 불과하다.’는 이론이 정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근대 형법의 지도적 사상이 죄인에게 형벌을 과한다는 것은 보복이나 위하가 아니고 사회적 병자인 죄인으로 하여금 교육을 받게 하여 또다시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복귀시키는데 형벌의 목적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사형수일지라도 교육을 받게 하여 건전한 국민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개인 존중의 사상에 합치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전체적 이익을 도모하는 점에도 합치될 것이며 이로써 형벌의 목적을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 입법의 면에 있어서도 하루속히 사형을 말살시켜야 할 것이며 이것이 우리들 법률학도에게 부과된 긴급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