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인물

학문(교육·학자)

고종민(高宗民)

내용
-
출처
남해의근현대문학인
출생지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643
시대
1965.12.10 ~

상세내용

1965년 경남 남해 출생으로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다. 울산학성고등학교 등을 거쳐 현재 경남과학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경상대학교에 출강중이다. 경상어문학 회장, 진주문화연구소 회원으로 있으면서 이야기문학과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주요논문으로는 '당금애기 이야기와 심청전이 닮은 점', '심청전의 보조인물 연구', '심봉사 연구' 등이 있으며, 공저로 '문학시간에 단편소설 깊이 읽기'가 있다.

 

 

○ 학 력

미조초등학교 / 미조중학교 / 남해고등학교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교육과 /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취득

 

 

○ 사회경력

교육경력 37년

 

 

○ 작품집

「심청전의 형성과 봉사 전승」 2009년, 민속원

「문학 시간에 단편소설 깊이 읽기」(공저), 2009년, 나라말

「빗방울 김수업」(공저), 2019년, 피플파워

「경남도사」(공저) 중 설화 부문 집필

 

 


 

「남해 양아리 석각의 수수께끼」

 

 

…… 가을철 별자리 그림인 남해 양아리 석각은 국제천문연맹에서 정한 별자리와 대부분 일치하는 삼별초군의 대몽항쟁 시기의 성좌도이다. 조선조 ‘천상열차분야지도’와는 다른 일면이 있긴 하나 성수의 위치와 부분적 성좌도가 자세히 일치하는 것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해당 석각의 성좌도는 북극성을 축으로 페르세우스자리, 안드로메다자리, 카시오페아자리, 삼각형자리, 페가수스자리, 조랑말자리, 백조자리, 도마뱀자리, 세페우스자리, 돌고래자리, 작은곰자리와 성좌도 일부의 양자리, 염소자리, 물고기자리, 현미경자리, 물병자리에 이르며 가을하늘의 전면을 보여준다.
 
또한 석각의 왼쪽 에 새겨진 글은 “오른쪽 그림은 하늘을 뜻하며 10월 10일부터 10월 18일까지는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좋은 때이다. 김민성 공이 그리고, 최금지 석장수가 새겼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고려 말 삼별초군의 항쟁(1270년~1272년)이 제주, 진도, 남해, 창선, 마산, 김해, 거제 등지를 요새화했던 것으로 볼 때 이 석각이 삼별초군이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학계가 밝히는 삼별초의 루트는 제주도를 지나 오키나와(유구)까지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말하자면 삼별초의 루트가 공교롭게도 설화 속의 서복 경로와 합치된다는 말이다. 이 석각의 주인공이 서복이라고 우기기에는 세월이 이 바위 앞에서만큼은 눈을 감았다고 해야 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2년 서기 414년에 세웠고 1,775자를 새겼지만 지금은 이미 150여 자가 훼손된 상태이고, 남해 노량 충렬사 입구에 있는 ‘자암김구선생적려유허추모비’는 영조 42년 서기 1766년에 세웠지만 벌써 두 자가 비바람에 씻기어 없어졌다. ‘서불과차설(徐巿過此設)’에 따르자면 서복은 기원전 210년경 사람이 되니 석각은 2,200살이란 말이 된다.
그런데 이토록 선명하게 남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성좌도를 그릴 때 점으로 찍는 방식의 성혈도와 선으로 그어 그리는 성좌도의 기점과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석기 사람들은 고인돌 위에 별자리를 새길 경우에는 점으로 찍고 있지만 선으로 이어 그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별자리를 그릴 때 언제부터 선으로 별과 별을 이어가며 그리게 되었을까? 선으로 그린 성좌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조선 초기부터 석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으로 제작, 보급되었다. 칼 루퍼스는 1913년에 이 천문도가 고구려 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이후 1934년에 발간된 <경성부사>에서는 고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건성이라는 별 이름은 왕건의 이름을 피휘해 입성이라 표기함)고 밝히고 있으니, 선으로 그려진 남해 양아리 석각을 새긴 해가 1270년으로 소급된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모순이 없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