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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학문(교육·학자)

김봉천(金奉千)

내용
김봉천(金奉千)
출처
남해의근현대문학인
출생지
남해군 창선면 장포마을
시대
1947.07.05 ~

상세내용

서울에서 고교 국어교사로 정년퇴직 

교사 재직 시에 7차 교육과정 연구위원, 중고등 교과서 심의워원, 서울교육 편집위원 일을 함.

퇴직 후에는 배움의 기회를 잃고 서럽게 살아온 사람들을 위하여 무료 교육 기관인 나눔야간학교를 설립, 한글반, 중졸검정고시반, 고졸 검정고시반, 다문화가정반 등을 개설하여 9년간 운영하다가 사정에 의하여 문을 닫고, 지금은 복지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에서 성인 문해 강의를 하고 있음.

 

 

○ 학  력

진동초등학교 / 창선중학교 / 창선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 국제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 수 상

「서정문학」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동단

서울시 교육감 및 교육부총리표창 / 홍조근정훈장 서훈

 

 

바닷가 여인

 

....새댁은 석 달 전 이웃 대산골마을(부윤리)에서 내가 사는 장포마을 박성주라는 청년에게 시집을 왔다.

둘은 스무 살 동갑내기였다. 철부지 사랑을 배울 때쯤 신랑은 남해 바다 멀리 세존도 근해로 만선의 꿈을 안고 고기 잡으러 떠났다. 배가 한 번 나가면 열흘 만에 돌아오곤 했다. 새댁은 만선의 깃발을 날리며 무사 귀환하기를 매일매일 용왕님께 빌었다. 열흘이 다 되어갈 무렵 태풍이 집채 만한 파도를 몰고 왔다. 섬 전체가 와르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남편을 바다로 보낸 섬 아낙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른 배들은 다 돌아왔는데, 새댁이 기다리는 배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사고가 난 것이라 했다. 하루 이틀 사흘....또 한 달이 지났다. 아침 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장엄하게 매일 매일 다시 떠오르는데, 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새댁은 가마 타고 시집올 때 입었던 옥색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바닷가에 서 있었다. 저 멀리 아득히 뻗어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두 손을 가만히 모아잡고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갈매기의 날갯짓도 섬마을 아낙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열흘이 넘고 보름이 넘어도 지칠 줄 몰랐다. 어쩌면 용왕에게 이끌려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내가 본 새댁의 모습은 용왕이 보낸 바다의 딸이었다.

그리움이 가득 찬 눈빛이며, 얼굴 가득 담고 있는 기다림의 표정이 바다를 고요히 잠재울 것도 같았다.

두 달이 지났는데도 매일같이 성모 마리아상처럼 기도하듯 서 있었다. 새댁의 주위는 성역 지대였다. 아무도 그 성역 지대에 접근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새댁의 그 애절한 기다림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댁의 눈앞에 배 한 척이 가물거렸다.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가 오가는 바다이지만 그 배는 유독 낯설지 않았다.

배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욱 낯익어 보였다.

새댁의 눈동자가 커지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한 맺힌 가슴을 콩콩 방망이질하듯 통통거리는 기관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새댁은 환상일 거라 생각했다. 통통거리는 소리도 환청일 거라 생각했다. 뱃고동이 길게 울었다. 

새댁은 신랑의 영혼을 싣고 오는 용왕님의 구슬픈 울음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