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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인물

학문(교육·학자)

문신수 (文信洙)

상세내용

서면 작장마을 출신. 교육자. 호는 이웃이고,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문인. 평생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문인으로서도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1961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소설 <백타원>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동화와 소설, 수필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19살이던 1947년 중현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94년 66세의 나이로 남해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했다.
남해의 문인들이 활동할 터전을 만들고자 "남해문학회"를 창립했고, 이후 이들의 동인지 <남해문학>이 올해까지도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작품집에 "부부합창"을 비롯해 "아름다운 음악소리", "단방귀 이야기", "꿈꾸는 겨울나무" 등이 있다. 서면 스포츠파크 호텔 앞에 ‘이웃 문신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 학력

 

성명초등학교 / 1947년 경상남도초등학교원양성소 수료

 

 

▶ 경력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 덕산초등학교, 남상초등학교, 대서초등학교, 남해초등학교 교장 역임

 

 

 

남해는 오랜 기간 많은 유배객들이 와 지내면서 다양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이들이 남긴 성과는 우리나라 유배 문학의 백미편(白眉篇)이면서,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이 문을 닫고 식민지시대와 해방 이후 현재까지, 비록 유배라는 제도는 사라졌지만, 남해에는 과거 유배객들의 문학정신을 이어받은 작가들이 계속 배출되었다. 이들은 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문학 정신을 일구어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활약했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문인들 가운데 두 사람의 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생을 남해에서 교직에 몸담아 살면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한 이웃 문신수(文信洙, 1928.2.3-2002.5.11)와 60년대부터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 한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정을병(鄭乙炳, 1934.7.5-2009.2.18)이 그들이다.

문신수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고향 남해를 떠나지 않고 교직을 천직으로 삼으며 교육에 힘쓰다가 남해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그야말로 토박이 남해 작가라 할 만하다. 정을병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중앙 문단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누구도 넘보기 힘든 문학 세계를 완성했다. 두 사람은 남해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이후 남해 출신 문인들의 정신적, 문학적 귀감으로서 지금도 찬란한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이웃 문신수 선생은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작장리에서 아버지 문두열과 어머니 박소아 슬하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7년 경상남도 초등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그해 12월부터 교직에 나가 평교사와 교감, 장학사, 교장 등 직책을 두루 지냈다. 그는 거의 평생 고향 남해를 떠난 적이 없었다. 교직도 남해에 있는 학교에서 이어갔고, 거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향 서면 장작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교사로서 그는 성실함과 겸허함의 표상처럼 행동해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모범이 되었다. 집에서는 자상하지만 근엄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고, 밖에서는 친절하고 올곧은 이웃이었으며, 학교에서는 스승의 길에서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참된 교사였다.

남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제 일처럼 나서 도왔고, 경사가 나면 버선발로 뛰어가 축하해 주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해타(咳唾)를 받은 많은 제자들과 후학, 문인들이 그의 인품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면, 이런 태도가 세간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식이나 인사치레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선생은 문인으로 일찍 문단에 나오지는 않았다. 동생 문중근의 회고에 따르면 선생의 문재(文才)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배움이 깊지는 않았지만, 기억력도 좋고 책을 많이 읽은 데다 학구열도 높아 이웃 사람들에게 전래되는 문학작품을 구연(口演)해 들려주었다고 한다. 또 목청도 좋아 소리도 잘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선생은 34살 되던 1961년 7월에 단편소설 <백타원(白橢圓)>을 '자유문학'에 발표해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생은 꼭 소설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천직이 초등학교 교사라 학생들의 인성과 사고에 도움이 될 동화 창작에도 마음을 많이 쏟았다. 그 밖에도 이웃들과 벗들, 후생(後生)에게도 길잡이가 될 만한 좋은 말들을 자주 지상에 발표했다.

교직에 봉사하느라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는 못했어도, 이렇게 발표해서 모은 글들은 생전에 일곱 권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977년 첫 창작집 '부부합창(夫婦合唱)'이 범우사에서 출간되었고, 1987년 8월에는 전기수와 함께 엮은 수상집 '2인수상집'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되었다. 1988년 10월에는 동화집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아동문예사에서 냈고, 1991년 9월에도 동화집 '단방귀 이야기'를 윤진문화사에서 출판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장편 소년소설 '꿈꾸는 겨울나무'가 도서출판 윤성에서 발행되고, 1994년 7월에는 동화집 '바통 지팡이'를 중원사에서 간행했다. 선생의 마지막 작품집인 창작집 '석새 베에 열새 바느질'은 1997년 9월에 범우사에서 나왔다.

2002년 향년 74살로 세상과 이별한 선생의 장례는 남해문화인/경남문인협회 공동으로 치러졌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2011년 5월에 생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세상살이 토막말'라는 이름으로 도서출판 남해시대에서 출간되었고, 10주기를 맞아 2012년 1월에는 유고집 '못다 부른 이름'이 도서출판 남해시대에서 간행되었다.

문단의 이력으로 볼 때 결코 많은 창작은 아니었지만, 이들 작품에는 선생이 세상을 향해 쏟아낸 진실한 마음이 새록새록 녹아 있다. 지금 읽어도 그의 작품들는 인정과 선심(善心)에 바탕을 둔 훈훈한 사연들이 가득해 가슴을 따뜻하게 데운다.

선생은 교육과 창작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남해를 문화의 고장으로 가꿔나갈 후배 문인들의 기량을 키우고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서 선생은 1982년 3월 5일 몇몇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남해문학회’를 창설했고, 초대 회장의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2020년 올해로 22호까지 나온 작품집 '남해문학'은 남해의 작은 문학사라고 할 만큼 남해 출신 문인들 활동의 텃밭이 되었다.

서면 서상 스포츠파크 공원에 가면 ‘이웃 문신수 선생 문학비’가 있다.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세워진 이 비는 앞면에 선생이 평소 즐겨 쓰던 말 “안에서는 오순도순 밖에서는 서글서글”이 새겨져 있어 평생의 소신처럼 사람들을 반긴다.

정을병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까지 우리 문단의 큰 축으로 활동했던 소설가다. 그의 문학이 보여준 성과는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했고, 시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적지 않게 창작했다.

정을병은 1934년 남해군 이동면에서 태어났다. 1956년 한국신학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젊은 나이에 신학대학을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문학이 내포할 비범한 세계의 일면을 암시하는 일이다. 1972년에는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1959년 '자유공론'에 단편 <철조망>과 <의지>를 발표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선보였다가 1962년 '현대문학'에 단편 <부도(不渡)>와 <반(反)모랄>이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는 평생 대단히 많은 책을 출간했다. 스스로 양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수준 역시 우열(優劣)을 나눌 수 없이 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작품만 열거해도 '개새끼들'(1966)을 비롯해 '유의혼(有醫村)'(1968), '아테나이의 비명(碑銘)'(1968), '말세론(末世論)'(1968), '받아들인다는 문제'(1970), '도피여행(逃避旅行)'(1971), '피임사회(避妊社會)'(1972) 등이 있다.

2003년에는 '정을병문학선집'(국학자료원 간)이 8권으로 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창작 작품만 실려 있다. 이 밖에도 유고집 '수행'(2009)이 있다.

정을병의 문학 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고발문학’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본인의 술회도 있지만, 그는 체험하지 않고는 표현하지 못하는,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된 작가다. 어떤 작가든 체험 없는 문학이란 있을 수 없기는 하지만, 정을병의 체험은 그 농도가 사뭇 다르다. 단지 세상 경험이라는 물질적인 틀을 넘어서 정신적, 이념적, 원초적 고민과 대안에 대한 사유까지도 그의 체험 범주인 것이다. 고발문학이란 무엇인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 그 불화(不和)의 원인을 낱낱이 드러내는, 힘의 문학을 말한다.

이런 고발문학의 정수로 불릴 만한 작품이 단편 <육조지>다. 1974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 정을병은 당시의 풍속 세태를 교도소(일명 감빵)에 들어간 한 죄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으로 재현해서 신랄하게 폭로했다.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는 블랙 코미디적 선언을 통해 정을병은 우리나라 법체계의 모순과 동맥경화를 거침없이 폭로했다. 부조리와 부패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인 문제를 그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던졌다.

정을병은 다독(多讀)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속독법(速讀法)을 익혀 웬만한 책은 몇 시간 만에 완독한다고 자부했던 그는 평생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독서의 양만큼 지식의 폭도 넓었는데, 현대 한국의 지적, 문화적 풍속도를 움켜쥐었는가 하면 서양의 지적 전통에도 대단히 해박했다.

1966년 9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중편소설 <까토의 자유>는 고대 로마 시대의 부패상과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는 근원적 진리를 ‘까토’라는 인물의 삶과 죽음에 견주어 갈파했다. 이 작품은 고대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성도 띠고 있다. 3공화국 때 독재자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독선적이고 위선적으로 행동했던, 부패한 실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직조되어 있는 이런 작품은 지금 읽어도 생동감이 넘치고, 그릇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큰 암시를 제공한다. 박정희 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때 이런 풍자와 야유를 구사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았다.

남해는 유배문학의 산실이자 21세기 현대 문학을 이끌어가는 뛰어난 문인들이 연이어 나온 문학의 고장이다. 여기서는 문신수 선생과 정을병 두 사람만 소개했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봐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동 중인 남해 출신 문인, 아니 예술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남해는 이들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주춧돌 삼아 미래 한국문학을 이끌 작가의 산실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