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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문화유산

남해군 문화유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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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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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유산

봉수(烽燧)

내용
남해 - 봉수(烽燧) , 당항 신흥사 삼층석탑(唐項 新興寺 三層石塔)
출처
향우회지 3호 / 보도매체
주소
-

상세내용

▶ 봉수(烽燧)란?
 

동서양의 고대국가에서부터 군사상의 통신 수단으로 많이 이용된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나 정식 법으로 제정되어 실시된 것은 고려 의종 3년(1149년) 서북면 병마사(西北面 兵馬使) 조진약(趙晉若)의 제의에 의하여 밤에는 불을, 낮에는 연기를 올리는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 시설로 군사상 요지로 생각되는 산꼭대기에 대략 수십리의 일정한 거리마다 봉수대(烽燧臺)를 설치하였고, 평시에는 1회(일거(一炬)) 또는 일연(一煙), 적의 모습이 나타나면 2회, 적이 경계에 나타나면 3회, 적이 경계를 침범하면 4회, 싸움이 벌어지면 5회로 긴급히 연락한다.
연일 접전이면 낭분(狼糞 : 여우똥)을 사용하여 변경으로부터 점차 서울 목멱산(木覓山 : 남산)에 이르게 하였다.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 때는 봉수군(烽燧軍)이 릴레이식으로 달려서 보고하는데 서울에서는 오원(伍員)이 병조에게 보고하고, 지방에서는 오장(伍將)이 보고하였다.
 
우리 면내에는 소흘산 봉수(所屹山 烽燧)가 있고 상가 가마봉에 봉수터가 남아 있다고 하나 문헌상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소흘산 봉수(所屹山 烽燧)
 

소흘산은 현재의 홍현 뒤 망산(望山), 설흘산(雪屹山) 또는 소흘산(疎屹山)이라고도 한다. 남해안 왜구의 침입을 금산(錦山)과 사천(泗川) 전남(全南) 등지에 연락하기 위해 만들어진 봉수대로 전해 오고 있으며, 소흘산(所屹山) 510m의 산정(山頂)의 자연석 기단에 폭 7m, 높이 6m 정도의 방형 봉수대가 축조되어 있다.
남해현읍지(南海縣邑誌)에 따르면 현의 남쪽 30리에 있고, 동쪽으로는 금산 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전라도 순천(順天), 고돌산(古突山) 봉수에 응하고, 서로간의 거리는 6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남해의 봉수는 동래 다대포진(東萊 多大浦鎭)에서 시작되는 제2거선 뿐 아니라 순천에서 시작되는 제5거선에도 속하였다고 생각된다.
 
 

 
 
●  가천 암수바위(加川 彌勒佛)
 
 
일명 가천 미륵불이라고 한다. 이 미륵은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현령 조광진(趙光鎭 : 1751 4. 21~1753. 10)의 꿈에 의해 나타난 것을 자리를 파 보니 누운 채 있어 일으켜 세우고 논 다섯 마지기를 헌납, 미륵불에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치성을 드리면 천재지변을 막고 풍어를 기대한다고 전한다.
 
바위의 크기는 숫바위 높이 2.5m, 둘레 1.5m이고 암바위는 높이 2.5m, 둘레 2.5m의 선돌(立石) 형상이며, 숫바위는 남성의 성기(性器), 암바위는 아기를 밴 여자의 형상이다. 현재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  당항 신흥사 삼층석탑(唐項 新興寺 三層石塔)
 
 
지금은 당항의 탑앞마을로 변해 버린 옛 신흥사지(新興寺趾 : 신라 신문왕 681~691 때 원효대사 창건)에 있었던 3층 석탑이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몇 차례 옮겨 다니다가 주민들에 의하여 1957년에 지금의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져 정착되었다.
원래 위치(당항리 1031-4 박준근씨 집터)에 있다가 그 뒤 여러 차례 옮길 때마다 탑의 부품이 훼손 또는 망실된 것으로도 보여지는데, 기단부는 모두 없어졌고 1층 옥신석과 1·2·3층의 옥개석, 상륜부의 보개와 보륜만이 남아 있다. 2·3층의 옥신석은 후일에 보충한 것이나, 1층 옥신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보개, 보륜의 조각 수법이 탑 원래의 조형미를 연상케 하고 있다.
현재의 높이는 2.5m이며, 축조 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탑재(塔材)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조선 초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 자료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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