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2010년대
남해서불과차
상세내용
◈ 남해서불과차 ◈
▶ 중국 진시황제의 방사 서불이 남해로 왔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진나라 시황제의 명을 받은 방사 서복 일명이 동남동녀 3천 명과 각 분야의 장인들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삼신산으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고 한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유구한 세월의 더께에 쌓인 채 오늘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 삼신산의 한 곳이라 일컫는 산이 지금의 남해 금산이다. 이곳에 대를 이어 전해온 영험한 불로초의 비밀이 숨어있다.
불로초를 찾아 바다 건너 서불이 당도한 섬.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남해,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거대한 섬, 남해를 왜 보물섬이라 하는가?
남해는 바다 아닌가? 남해 어디에 있는 섬인가? 이쯤이면 동문서답이 아니라 답이 질문이 되어 묻는 이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지방자치가 시작되기 전에 비해 요즘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기도도량인 남해 금산 보리암, 노량해전에서 순직한 이순신 장군의 이충무공유적과 충렬사, 남해대교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 저 유명한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남구만 등이 유배되었던 섬에서 꽃피운 유배문학 등이 모범적인 답안들이다.
그러나 이런 모범적 답안의 내용들보다 남해는 더욱더 매력적인 섬이다. 보물은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아닌 묻혀졌던 것이 서서히 빛을 발함으로 인해 가치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관과 명경한 바다, 기암괴석의 산세 사이로 차분히 모습을 드러내는 암자들, 너른 시야 밑으로 펼쳐진 반도 남단의 풍광 뿐 아니라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국사 일연이 오래도록 머물며 사료 수집은 물론 팔만대장경 판각을 위해 분사 남해대장도감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낯설면서도 남해를 새롭게 한다.
그리고 유배문학작품을 남긴 6명을 비롯해 200여 명의 유배객이 곳곳에 남긴 족적들은 비단 남해가 겉으로 빼어난 풍광만이 아닌 안으로 뛰어난 정신문화와 영험한 비밀을 더불어 간직하고 있는 섬이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2,200여 년 전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넌 서불의 대규모 선단이 도착한 남해 삼신산[현 남해 금산]바위에 남긴 서불과차 또한 섬이 간직한 영험한 비밀을 풀 귀중한 사료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남해는 독특한 문화와 유적 때문에 외래객의 왕래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독특함이란 때론 이질감으로 비춰질 수 있다. 남해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을 유배객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유배되어 온 사람들은 권력의 희생양이기 이전에 최상류층의 신분을 지녔던 사람들이었기에 높은 지식과 곧은 절개를 지닌 존재였다.
그 자존심과 긍지가 자신들의 피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절망의 끝에 서 있었던 유배인들이 남긴 문화가 남해의 특징을 대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선비 정신이 강한 남해가 교육열이 높은 것도, 고향에 대한 애향심, 생활력이 강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