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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서적

2010년대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보도자료)

내용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의보존과 전승
출처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보존회
작가
-

상세내용

◈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 ◈

 

▶ 형성배경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은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구전에 따르면 해방이전에 고현면 관당들을 중심으로 한 육동(오곡, 관당, 남치, 대사, 탑동, 포상)에 사는 마을주민들은 새집을 짓고 집들이굿놀음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를 맞이하여 일제의 진족정신말살정책에 의해 놀이가 사라졌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재현이 되엇다. 그렇지만 오곡을 제외한 다른 마을에서는 복원하지 못하고, 오곡마을에서만 놀이를 복원하여 마을에 새집을 짓고 입택할 때는 반드시 집들이굿놀음을 했다고 한다.

현재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이 전승되는 오실(오곡)마을의 배경에는 세 마리의 봉황이 앉았다는 삼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관음포 매립지가 전답으로 개간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560여년전 제주고씨와 진양정씨, 달성서씨가 입동한 이후부터라고 하나 정확한 마을 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제주고씨는 휘 문경이 단종 2년(1454)에 통덕랑(정5품)으로 입동 하였고, 진양정씨는 휘 회영이 세종 25년(1443)에 참봉(종9품)으로 입동 하였고, 달성서씨는 별감으로 입동 하였는데, 모두 관원으로 입동 하였다는 세보의 기록이 있으며, 이 마을의 토민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의례 등은 철저하게 지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오곡마을에 살던 주민이 새롭게 주택을 건립하고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들을 모시는 제의와 전통 매구패들의 굿놀음과 백두산 두꺼비 업을 모시는 행위로 연희가 되었는데, 집들이를 통한 가신 모시기와 마을 잔치가 곁들여져 집들이 날은 하루 종일 즐겁게 어울려 지내는 민속놀이로서 오곡마을을 비롯한 인근 마을 동민들까지 모두가 집들이굿놀음하는 집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이러한 집들이 놀이는 고현면 각 마을에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나 모두 없어지고 오곡마을만 보존 전승되어지고 있다.

오곡마을 입구에는 400년이 훨씬 넘는 회화나무가 당산나무로 정해져 있으며,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이다. 이 당목은 보호수 12-22-5(1982.11.10.)호로 지정되어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옆에는 봉명정 팔각정의 쉼터가 있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오곡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실을 “오곡”이라 하였는데, 이전 명칭인 “오실”은 봉황과 관련 있는 오동나무마을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오동나무에 얽힌 시와 예찬한 글을 보겠다. 먼저 문정공 상촌 신흠(1566~1628) 시에,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이라 하였는데 ’오동나무는 천년 늙어도 아름다운 노래 항상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 함부로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인들의 글에 이런 글이 있다.

봉황은 비죽실이면, 불식이요

비오동이면, 불서요

비예천이면, 불음이라!고 하였다.

즉, 봉황은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동나무가 있으니 봉황이 오듯이 새집을 지으니 백두산 없이 들어온다는 뜻이 서로 통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 전승과정

전국 어느 곳에서나 새집이 마련되면 집들이를 했다. 그러나 고현면 관당들과 관음포를 둘러 싼 오곡, 관당, 남치, 대사, 탑동, 중앙동, 방월, 선원, 포상, 천동마을 등 10개 마을에서는 다른지역과 차별 나는 집들이를 했다. 먼저 마을 당산나무에서 대주를 헌관으로 모시고 당산제를 모신 후 마을 공동우물로 가서 새미굿을 행하였는데, 이것은 개인보다 마을 공동체가 항상 먼저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고, 마을이 잘 되어야 개인도 잘된다는 공동체 의식을 실행한 것이다. 이러한 마을 제례를 마치고나면 개인과 관련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집들이 집으로 가서 문굿을 한 후 집안으로 들어가 먼저 오방진굿을 한 다음 성주굿과 조왕굿을 한다.

그리고 장독굿, 뒷간굿 등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굿을 하는데 성주굿과 조왕굿은 필수이며, 나머지는 생략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동안 대문 밖에 백두산에서 온 두꺼비 업이 주위를 살피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업잽이가 알아차리고 업을 모시러 가면서 매구패를 데리고 대문 밖으로 간다.

업잽이는 백두산 업에게 여러 가지 질문으로 백두산 업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마당으로 모시고 와서 대주에게 대접을 잘하도록 하면, 대주 내외는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업앞에 놓고 큰 절을 한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매구패는 업을 인솔하여 곡간에 모신다. 이제 가신들을 모두 모셨기 때문에 잔치를 하는데, 매구패를 중심으로 대주를 비롯한 집안사람, 마을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마당에서 ’치나 친친 노세‘를 부르며 흥겹고 즐겁게 한바탕 춤을 추며 논다.

마지막으로 매구패들은 판굿으로 마무리를 한다. 잔치는 절정에 이르고 동네사람들은 술에 취해 춤을 추면서 잔치를 벌이지만, 참여자 모두는 마음속으로 새 집을 복록을 내려주시고, 재산도 늘리고, 자식도 번창하게 해 달라는 기원은 물론 마을의 안녕과 번영, 풍농과 가축번성도 같이 빈다.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은 1992년에 마을에 거주하는 정정해씨 집들이와 2013년에 강재우씨 신축 주택에서 집들이를 했다. 이 놀이는 비 정기의례로 행하지만, 그 맥은 전승되어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지고 있다. 이를 2005년에 기록화 하였고, 2009년, 2011년,2013년에 경남민속예술축제에 출품함으로서 역사상, 예술성, 학술성, 지역성 등 민속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는 주택구조가 한국전통 한옥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생활에 편리하도록 설계되어 건축되고 있는 관계로 집들이 전통 민속 제의와 놀이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에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은 집들이 제의와 음악적 그리고 연극적 요소가 포함된 전통 민속무형문화로서 이를 보존하고 전승할 가치가 높다고 인식되어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