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2020년대
남해문협 제22집
상세내용
◈ 남해문협 제22집 ◈
▶ 고구마 외1편
며칠 전 카톡에 고구마가 항암제라는 내용을 읽은 일이 있다. 벌써 30여 년 전인 것 같다. 당시 우리 마을의 정작 구조는 빈촌에 속하여, 집집마다 정지 면적이 거의 빈민대에 속하여, 벼를 재배하는 면적인 논의 소유가 적고 대부분 비탈진 산을 개간하여 밭을 이루고 가을에는 보리를 심는다. 다음해 6월 6일 망종 전에 보리를 거두고 그 뒷그루로 고구마를 심는다. 삼월 초순에 고구마 싹을 기르기 위하여 잘 보존해 고구마를 심고 이를 기른다. 보리배기가 끝나면 퇴비를 깔고 고구마 심을 두둑을 만든다. 문제는 그게 되었다고 고구마를 심는 것이 아니다.
비가 적당히 내리는 때를 기다리다가 일기 예보를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밭에 가서 두둑을 만들고 그 중심에 심는다.
고구마는 일본의 고귀위마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학명은 Ipomoea batatas LAM. 이다. 원산지는 열대 아메리카로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전래되는데, 우리 마을에는 두미도로 통하여 전래되었다고 본다. 고구마라는 이름도 일본말 고귀위마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고구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성인병을 예방해 주는 효과를 볼 수 있고, 풍부한 비타민C 성분은 100g당 30mg을 함유하고 있으며, 포도당과 전분 그리고 단당도 풍부하고, 고구마 중 자색 고구마에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도 다량 함유하여 암 예방과 노화를 지연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식이 섬유인 셀룰로스 성분도 함유하고 있어 장 운동을 원활하게 해 주는 식품이라고 한다. 대부분 10월 말경에 고구마를 캐면 땅을 파서 보온 장치를 해서 묻어 두었다가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에 삶아서 먹는다
묻어 두기가 성가실 때는 썰어서 말린다. 그걸게 말린 고구마를 악다지 또는 뺃떼기라고 하여 봄이 되면 절량기에 보조 식량으로 큰 역할을 했다. 사카린이나 당원, 설탈들을 콩과 함께 삶아서 먹으면 보조식량 역할을 잘하였다. 요즘은 멧돼지의 습격으로 잘 심지 않지만 고구마가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였다.
도시의 찬 겨울에 길거리에 나가서 구운 고구마를 만나면 꼭 사서 집으로 가지고 가서 이불 속에서 먹으면 그리움의 향수가 밀물처럼 밀려 왔는데, 요즘 농촌에 살면서도 심지 않거나 재배 면적이 줄어든 것은 개체수가 늘어가는 멧돼지 떼들이 덤벼들기 때문이다.
그때 그 고구마의 향수를 다시 더듬는다.
過秋(과추)
해마다 가을은 길옆 억새풀이 하얀 머리를 내밀며 이제 가을이 왔소 하는 듯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그도 질새라 산모둥이에는 노량 저고리 빨강 치마를 입고 다가오는 여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당장 달려와서 내 품속에 안길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그래서 가을이 좋다.
온갖 추억들을 되새기게 하는 가을이다. 이럴 때쯤은 어디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래저래 스케줄을 예상해 보지만 별다르게 뚜렷한 스케줄이 떠오리지 않아서 더듬거리는데 마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을이 왔는데 우울증 환자처럼 집에 있지 말고 단풍 구경이라도 가자.”고 한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그것도 당일 점심이나 먹거리도 다 준비해서 온다는 것이다. 열 시까지 돌고개 앞에서 만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참 좋으면서 설렌다. 팔순이 된 나이에도 만나자는 사람이 있으니 비록 남자들끼리일지라도 설레는 것은 아직도 젊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일까 하고 혼자 아슴프레 지난 일들을 생각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옛날 친하게 지내던 어친이 찾아왔다. 대뜸 하는 말이 단풍 구경을 가자는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손 잡고 걸었다. 이 골목길은 추억이 가장 짙게 물든 길인데 서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데, “얼마만이죠.”하고 묻는 말에 “글세.” 나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우린 왜 사랑을 지속하지 못했지요?”
“그걸 왜 묻지? 먼저 시집을 가 버리니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지.”하였더니 끼엇던 팔짱에 힘을 더 강하게 주었다. “죄송해요, 그래도 나는 항상 잊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내린 소낙비가 둘 사이를 떼어 놓고, 놀라서 깨니 꿈이었다.
이런 꿈은 깨고 나면 항상 아쉽다. 더 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달콤한 봄꿈이 아니라 시원섭섭한 가을 꿈이다. 빈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추억 더듬기에 사로잡혔다.
약속된 시간에 다들 모여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걸었다. 노인일수록 걷는 건강을 체험하는 5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 아름답다 못해 앙증스럽다. 가을 단풍이 그래서 좋다. 점심을 먹는 호숫가에는 물위에 떨어져 흐르는 낙엽이 더 아름답다. 이제 철새인 기러기가 날아오고 아름다운 가을 달이 중천에 뜨면 한 폭의 그림 속에 서 있는 내가 다시 보인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가고 있다. 내년에 다시 온다는 약속이라도 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