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시인) 이상금 시인의 시는 어촌과 항도에 대한 기억과 회상 속에서 지난날의 정서를 되살려낸다.
그의 작품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유소년 시절의 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어부의 나라에도 비가 내린다」는 바닷가에서 이어가는 질박한 삶의 근본 구도를 보여준다.
육지에서 바다를,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민들에게는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도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 바닷가 선착장이다.
“방파제 등대만 알 수 있는/ 밑바닥 티끌같은 이야기”가 작품마다 스며 있다.
「도다리 가족」과 「아버지의 아버지」는 가난한 어촌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어민의 일상 생업과 가족사를 담고 있다.
「고추잠자리의 오후」에는 첫사랑의 미련이, 「하모니카」에는 ‘아스라한 추억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포착된다.
지식인의 교양 체험이 아니라 평범한 어민 가족의 현실 체험이 주조를 이루는 이러한 작품들은 난해한 언어가 난무하는 동시대의 부박한 유행을 넘어서고 있다.
남송우 (문학평론가) 이상금 시인의 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시적 원천은 바다와 섬이다.
전방위로 열린 무한한 바다 공간이 선사한 상상력과 몸과 마음을 절여온 갯내음과 사철 부는 바닷바람이 그의 시심을 키워온 셈이다. 그런데 이 뿌리 깊은 시심을 그는 오랫동안 마음 깊이 간직하고만 살아왔다.
평생 교육과 연구를 위해 시심은 마음의 창고에 재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첫 시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4부로 짜여진 그의 첫 시집은 1부는 고향, 2부 바다, 3부 계절, 4부 달리기가 주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고향’ 부분에서 백발이 된 「뒷집 할머니」의 기가 막힐 사연들은 평생 고향을 지키고 살아온 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애달픈 서사의 절구이며, ‘바다’에서는 「손도 죽방렴」을 통해 남해 섬이 품고 있는 갯마을의 속살을 엿보게 한다.
‘계절’에서 「백무동 산나리」는 속 깊이 내장된 감정을 휘몰이로 풀어내는 리듬 감각이 그의 평소의 말빨 이상으로 빼어나다.
그리고 ‘달리기’에서 「태풍 매미」가 내보이는 태풍과 달리기를 잘 버물어 빚어낸 시적 발상은 잘 빚어진 항아리로 자리하고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첫 시집을 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세계를 자아화 하는 시적 감성과 리듬 의식이 더욱 놀랍다.
맨발의 마라토너로 온 땅과 산을 누비던 그가 이제 ‘맨발의 시인’으로 시로(詩路)를 출발했다. 완주가 끝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날 시의 나라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