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2020년대
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지고
상세내용
◈ 40년을 바람처럼 떠돌아딘 기억과 기록 ◈
운명의 시작은 어릴 적 산에서 들에서 부르는 어른들의 일 소리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소리가 신병같이 나를 당겼다. 인근에 매굿판이라도 벌어지면 온종일 따라다닐 정도로 신명이 남달랐다.
그러다가 18세에 길을 찾게 되었다. 우연히 진주에서 김수악 명인의 공연을 보고 구음과 장고에 깊이 매료되어 평생 공부의 다짐을 세웠다. 그것이 국악으로의 정식 입문이었다.
대학 시절, 어쩌다 좋은 소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만사 제쳐두고 통일호와 완행버스와 통통배를 타고 전국으로 달려갔다. 농촌에서, 산골 오지에서, 때로는 섬마을에서 그들과 같이 모를 심고, 버섯을 따고 낙지를 잡으며 신뢰 관계를 쌓았고, 그 속에서 사투리를 익히고 노래와 문화를 닥치는 대로 배우며 참 행복했었다.
이렇게 방방곡곡 숨어있는 소리를 찾아 여러 어른을 스승으로 삼고 판소리, 구음, 들소리, 상여소리, 중타령, 아라리, 밀양아리랑, 성주풀이, 어산영 등을 배웠다.
그리고 결국 판의 주변인으로 머무는 것이 아쉬워, 아예 20대 후반에는 3년간 실제 굿판에서 장고와 구음을 담당하는 악공으로 들어가 굿 음악을 배우기도 했다. 그 후 전통문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로, 한 손에 펜과 장고 채를 들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강의실과 도서관과 현장을 쫓아다녔다.
역마살이 낀 탓일까. 직접 사람과 문화를 전국 구석구석까지 접 할 수 있는 방송인을 직업으로 택하여 '6시 내 고향', 'TV쇼 진품명품', 'TV 전국 기행', '달팽이' 등 많은 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역의 소리와 풍물을 탐구하면서 폭을 넓혔다.
그렇게 40년을 여기저기를 바람처럼 떠돌아다닌 발자국의 기억과 기록이 곳간에 가득 찼다. 내가 과거를 쫓아다니는 동안 세상은 빠른 문명을 동력으로 무섭게 변했다. 그리고 우리가 누렸던 모든 근대 문물이 박물관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훌륭한 요리사가 묵은장으로 요리의 제맛을 살리듯이, '과거의 잔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어렵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노래가 들리는 글쓰기로 맛있는 밥상을 만들어 보았다.
어떤 이에게는 향수의 결핍을 메우는 추억이 되고, AI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존재감이 사라져 가는 어떤 이에게는 뉴트로의 새로운 영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