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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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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하준천(河準千)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고현면 포상리
시대
-

상세내용

하준천 선생은 경남 남해군 고현면 포상리 963번지에서 부친 하일청씨 슬하에서 1897년 11월 1일 태어났다. 천품과 재질이 뛰어나 하나를 보면 백을 깨달아 백년 만에 한 번 태어날 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훌륭했다.

어려서부터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하게 느끼시고 국운을 걱정하시며 인생의 본질과 구국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니 인내천의 종지 아래 보국안민 광제창생 포덕천하의 큰 이상을 위하여 동학(천도교)에 입도(포덕 56년:1915년)하시니 김성준, 문장일, 이채일 다음으로 입도하니 37인의 남해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활동케 한 셈이다.

신용구 진주농립학교를 졸업(1916년)하고 천도교중앙본부에 10원을 납부했다. 1926년 3월부터 3년간 남해 설천보통학교 교사(훈도)를 역임하고 1929년부터 고현보통학교 교사(훈도)로 근무하신 분이다.

교사로 근무할 때 학생들에게 항일교육을 시키고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한 민족이다. 일본을 ‘왜’라고 부른 이유는 미개인이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니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청, 정상기, 정훈도, 정재모, 윤병호 등과 동지를 규합하여 밀의를 거듭하여 애국애족 정신을 앙양하는 데 애쓴 분이다.

50여 년간 포덕과 교화로서 신앙의 핵심이 찬 금사옥사로 다듬어 주시고 시운시변에 따른 시대 교화에 주력하실 때 명명한 새 운수를 바로 받도록 시사 내성단서사로서 참회문 등을 성문화하신 분이다.

설법이 탁월한 교화력은 무왕불복의 운이 남해 선도를 감돌고 독신교인 수 천호를 마치 천도교 왕국을 방불케 하시고 항일 투쟁의 선봉이었다.

천명에 따라 포덕 104년(1963년) 2월 11일 66세 일기로 환원하시니 묵암 신용구 선생은 공문에 안연의 죽음을 회상케 하셨다. “우리는 용담 연월의 후천 새 운수가 저 바닷물처럼 억만년 무궁토록 연면히 흐를 것을 믿고 천덕사은을 길이 빛내고자 한다.”고 했다. 유서 깊은 노량 뒷산에 선생의 묘소가 잇고 묘소에 비를 세웠다.

남해군 덕신초등학교 입구에 선생의 공적비가 포덕 115년 5월 25일 회암 하준천 선생 묘비 건립위원회에서 세워 아름답고 훌륭한 업적을 영원히 빛나게 하고 있다.

선생이 지은 ‘학도가’ 한 줄을 읽어보면 애국 애족심을 짐작할 수 있다.

화려강산 동반도는 우리의 조국이요

단군자손 배달족은 우리의 동포이다.

1930년대에는 하동읍 소재 하동주조조합의 신재우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남해군 노량리로 옮겨 단독으로 양조장을 개업하여 경영했다.

천도교에 입도(포덕 56년)하여 포덕사와 도사를 거쳐 감사원이 되었고 천도교 대표 격인 교령이 되었고 특수 성력이 있다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첫 부인은 장수이씨 이초춘(1896~1945)이다. 두 번째 부인 김령김씨(1924~1985)다. 장남에 하신우가 있다.

하신우 선생은 중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교육계에 투신하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자부는 임복연, 아들 3명은 하철수(허양선), 하덕수(김순연). 하두수(왕옥순)을 두었다.

『남해군지』 945면에 보면 천도교 남해교구 창건자 하준호이라 했는데, 시기는 1935년이라 했으며 장소는 설천면 비란 261번지라고 소개되었다.

다음 명단은 하준천 선생과 함께 호라동한 이들이다.

김성준, 김계영, 김인문, 박석조, 박의창, 정훈도, 이익근

정민현, 정재모, 강명오, 김채옹, 박영옥, 문장길. 공창열

김명진, 정세기, 정주익, 공의열, 박기순, 정명주, 박동석

유근열, 박정은, 유춘욱, 백남철, 김달현, 유우모, 김도현

박대인, 박희철, 박인범, 박봉윤, 강포용, 김춘권, 박평옥

김금용

가까운 친족 중에 부산교육대학 총장 하윤수 씨가 있고, 총장의 할아버지 하준호 선생은 항일투사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분이며, 총장의 부친 하석우 선생도 항일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증빙 서류를 찾지 못해싿.

『부산경남3·1운동사』에 기재된 행적을 기록해 본다.

경술합방으로 그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고 항일구군운동에 목숨을 바칠 결심을 했다.

그는 천도교 진주교구장 신용구의 지도를 받으며 종교인으로 조국 광복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남해군 설천면 윤도청, 윤병호, 정상기, 정훈도, 정재모 등 동지를 규합하여 밀의를 거듭하여 각 면 조직책을 규합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삼동면의 김일문, 하상근과 남해면의 문창일, 김성준, 강한문, 박경수 등과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광복운동을 위해서 활동을 했다.

1919년 9월에 남해청년회를 조직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했고 사립 양명보통학교, 고현보통학교, 하일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불온사상가로 지목되어 면직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무렵 일본 관리들이 노량 충렬사를 철거하려 할 때 정천기. 이시봉, 최익수 등과 협력하여 그것을 반대하여 성사시켰다.

선생은 평생을 통하여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일생을 마쳤는데 사재를 들여서 세운 덕신간이학교 교정에 그 지방민들은 그의 육영사업과 조국애를 추모하고 ‘학도가’를 지었다.

화려강산 동반도는 우리의 조국이요, 단군 자손 배달족은 우리의 동포이다. 학도들아 형제들아 깊이 맹세하자 4천년 역사국을 영원히 빛내세,

선생의 애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교내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선생의 강론집이 천도교 교령 고정훈 평술로 모시는 사람들 출판사에서 2011년, 총 322면으로 발간되었다. 책의 본문 가운데 일부를 보면

우리 도는 본래 사람성 자연을 근본한 것인고로 무위이화로 되는 것이니, 내게 있는 한울 마음을 지키고 한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 가르침을 받으면 화기가 자연의 가운데서 나와서 사람과 한울이 둘이 아니요, 한울 기운이 내 기운이 되어 서로 떠나지 못하는 그 이치를 가지게 하는 것이니라.

지기라는 것은 영수 즉 대우주위 대 생명을 이른 말이니 자기는 우주 사이에 가득히차고 넘치는 허령으로 이는 일에 간섭치 않음이 없으며 어느 일에 명령치 않은 데가 없어 형용하여 말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되 그 산 기운이 한울과 땅의 뿌리가 되어 있으며 일만 물건이 자기의 속에서 나며 지기의 속에서 자라며 지기의 속으로 돌아가나니 말하자면 지기는 천지의 뿌리며 만물의 어머니며 생명이라 만물이 그리고 나고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 또한 혼원이 알기로서 결코 두 가지 물건이 아니니라.

『남해군지』에 천도교 남해교구 창건자는 하준천이고, 1939년이라 기록되었는데, 설천면 비란리 261번지에 소재했다고 기록되었다. 현재 대표자 도정은 정형실이고, 교인수는 400여 명이라 한다.

선생의 묘소는 고현면 포상리 달실에 있으며, 묘비문에 묘지건립위원회에서 삼가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