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정화표(丁華杓)
상세내용
정화표 선생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오룡리 1084번지에서 1914년 8월 17일생 태어난 분이다.
아버지 정한영의 뜻에 따라 삼천포소학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졸업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추진하고 교장 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숙부 정유실이 보증하여 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진주시내 거주지는 영정(수정 평안) 14번지로 학교에서 가까운 곳이다.
선생은 국어와 역사 과목을 좋아했으며 축구와 소설을 취미로 했다고 전해온다. 일본인 선생이 일본 문화가 조선 문화보다 앞서고 옥봉동 고분을 파헤치며 나온 굽다리, 도자기 등을 보여 주며 진주와 경남 일원이 일본 땅 임나일본부라고 가르칠 때는 토하고 싶었다.
조선 말은 가정에서 사용하고 학교에서는 우수한 일본 말을 사용하라고 말하는 선생을 향해 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주고 60년사』133면에 의하면 정화표 선생은 1930년 동맹휴교로 학교 측으로부터 1930년 1월 17일부터 2월 17일까지 정학 처분되었고 1931년 12월 백지답안지 제출동맹 사건으로 12월 18일 정학 처분과 근신 처분을 받고 11월 7일자에는 동맹휴교위원이 되어 동맹휴교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12월 16일자로 퇴학을 명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고 취업도 할 수 없는 일생을 버려버린 상황이었다.
향리에서 농사짓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 온다.
정화표 선생은 김릉 김씨 김근두의 딸 김정아와 결혼해 정재진과 정재홍, 정재휘, 정재후, 정재욱 등 5남과 정영아, 정명자, 정명옥, 정명선 등 4녀를 두었고 잘남 정재진은 최순자와 혼인해 슬하에서 정내성, 정민기, 정민철, 정은주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