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임충규(林忠圭)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창선면 옥천리
시대
-

상세내용

▶ 임충규(林忠圭)

임충규 선생은 남해군 창선면 옥천리 531번지가 본적지로 기록되었다. 나주 임씨 임병능과 강오상 슬하에서 장남으로 1895년 5월 14일 태어나 강원도 춘양군 장교리 둔도암 장조마을에서 생활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명문인 휘문고보를 1917년에 졸업하자 곧 사립학교 교원으로 들어가 1924년 3월까지 근무했으나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싫어했기 때문에 조기에 사직하고 처음에는 부모님이 계신 본적지 창선으로 귀향했다.

배일 사상을 가졌고 공산주의 사상이 농후하여 일제 경찰의 감시와 검문이 자주 있었다. 경찰서에 수시로 잡혀가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고 전해온다.

동산과 부동산을 합해 1만 엔 정도의 재산을 소유해 중간 정도의 생활을 하는 부모님이 계셨다. 1929년 7월 30일 동아일보 남해지국 창선분국 기자로 임용되어 활동하고 해외동포 위문금을 모집할 때 동참하기도 했다.

선생은 남원양씨 양좌환의 딸 양순이와 결혼해 슬하에서 임종열, 임종아, 임봉순, 임금희, 임정희 등을 두었다. 손자들은 임양택, 임송택, 임정택, 임천택, 임춘택, 임인택, 임인자, 임영숙, 임경희 등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