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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윤주봉(尹柱奉)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삼동면 동천리
시대
-

상세내용

▶ 윤주봉(尹柱奉)

윤주봉 선생은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천리 1836번지에서 파평윤씨 윤상무와 김해김씨 김소아 슬하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는 보국대, 징병, 징용이란 이름으로 조선의 젊은이들을 자원 또는 강압적으로 잡아가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또는 탄광으로 끌고가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현혹했다. 

선생은 야마구찌 소절시 소재 탄광 조장이 되어 임금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12시간 이상의 고된 작업을 시켰으므로 탄광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석탄가루를 마시면서 고되게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탄광을 벗어나 탈출하면서 아리랑을 고창하면서 대란독립만세를 부르다가 곧 일제 경찰에 발각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혼절했다.

1944년 3월 8일 야마구찌 재판소에서 국가총동원법 위반 등으로 벌금 2백 원이 부과되었다. 2백 원은 그 당시 면서기 월급의 7개월분이니 감당할 수 없는 벌금형이 언도된것이다. 그런데 이번 탈출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청난 벌금형이 부과되었다.

선생은 감옥에서 인체실험 대상이 되어 이상한 약을 계속 맞고 혼절하게 되는데, 감당할 수 없는 벌금을 부과하여 계속해서 감옥에 감금한 그대로 각종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선생은 김해김씨와 혼인했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다. 그것은 인간 실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