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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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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유태열(柳泰熱)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서면 서호리
시대
-

상세내용

▶ 유태열(柳泰熱)

유태열 선생은 경남 남해군 서면 서호리에서 1916년 5월 16일 태어났다.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북신상업학교에 입학했다.

북신상업학교 유학생회 14명이 모여 조선 민족이 차별을 견디며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조선독립을 위해 궐기할 것을 맹세했다.

이때 배상권(1993년 건국훈장 추서), 창녕군 대합 출신 문규영, 남해 출신 유태열, 마산 출신 조정규, 경북 성주 출신 최창현, 석도열, 박영석, 김낙곤 등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1938년 10월부터 1939년 2월 26일까지 10회 이상 비밀회합을 개최하고 조선어 교육의 폐지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폐교되는 일은 개탄스럽게 여겼다. 이것은 조선인 중에 위대한 사람을 배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조선 민족을 차별 압박하는 하나의 예라고 설명하고 혹은 바이아스만, 항주만 등의 일본군 상륙, 광동 함락의 보도는 모두 허위 보도이니 현혹되지 말 것을 다짐하고 일제히 봉기하여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발각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혼절했다.

1940년 8월 20일 배상권 선생은 징역 3년이 언도되었으나 감옥 내에서 죽어 순국하셨고, 조정규, 최창현, 문규영 등은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 형이 언도되었다.

1940년 12월 16일 신호지방 재판소에서 판결할 때 선생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유학생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투쟁을 결의했으며 미결로 옥고를 치렀지만 정식 재판까지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