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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양재문(梁在文)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설천면 문의리
시대
-

상세내용

▶ 양재문(梁在文)

양재문 선생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에서 1900년 10월 26일 태어났다. 선생은 남해군 설천면민들이 남해읍에 가서 3·1운동을 전개할 때 앞장서서 시위를 지도했다.

미리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설천면민들은 이예모와 정순조, 정학순, 정몽호, 윤주순등은 사전에 비밀회의를 개최하고, 4월 2일 오후 3시경 남양리 노상에서 출발했다. 큰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남해읍을 향하여 행진하며 나아갔다.

당시 고현면장 김치관이 경찰주재소에 밀고했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해산했다. 4월 4일은 남해읍 장날이었다. 각기 장꾼으로 가장하여 남해읍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경찰이 도로 중간을 감시하고 있었으나 장꾼으로 가장한 이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4일 오후 3시경 항일투사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며 가슴속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고 1천여 명의 군중 목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선생도 군중 앞에서 시위했으며 군청, 학교, 경찰 주재소로 다니며 직원들을 잡아내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할 때 동참했다.

해가 질 때까지 시위하다 면장 집으로 달려갔으나 피신한 면장은 남해경찰서 마루 밑에 숨어 있었다. 4월 6일 사천경찰서와 헌병대가 출동하여 항일투사들 수십 명을 연행하여 피검되었다.

진주법원에서 재판받을 때 선생도 재판을 받아 2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68년에 건립된 3·1 독립기념비문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고, 『부산경남3·1운동사』883면~907면에 선생의 이름이 기재되었는데, 오늘날까지 정부포상이 성사되지 못해 그 사유가 매우 궁금하다.

만주 길림성 하동에서 양재문 이름이 나오고 독립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중국 공산당 주하현 위원회 소속으로 들어가 활동하고 또 상해로 가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시 한구절을 받아 가슴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전해 온다.

한시가 『부산경남3·1운동사』906면과 907면에 기재되어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