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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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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심취명(沈就明)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남해읍
시대
-

상세내용

▶ 심취명(沈就明)

심취명 선생은 경남 남해군 남해읍 교회 목사로, 애국 강연으로 여러 차례 검거되었던 항일투사이시다. 아명은 신상호로 불렀다고 하며, 1875년 12월 5일생이다. 1896년 6월 10일 김봉숙과 최초로 서양식 기독교식으로 최초로 결혼식을 했다고 전해온다.

1910년 6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12월 청원한 심용명을 부산진 합직처에 왕길지와 동사 목사로 임명되었다고 기재되었다.

17명의 목사와 9명의 장로 중에 포함되었다고 했고 나대궐 선교사와 1910년 ~ 1912년 사이에 남해, 사천지역에서 선교할 때 동행했고 111명에게 셰례를 줄 때 선교보조 역할을 하면서 남해군에 대한 지식을 취득했다.

목사는 부산진교회에서 시무했고, 1918년 8회 경남노회에서 목사가 남해에 대하여 밝다는 이유로 남해지역 동사 목사로 허락한다고 결정했다. 1920년 10회 경남노회가 마산문창교회에서 개최될 때 노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목사는 영남 최초로 목사가 되었고,  남해지역 동사 목사로 부임했고 남해읍 북변동 남해읍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다. 목사는 부산, 경남지역의 최초로 장로 장립을 받았고 선교사들을 도와 활동하고 1914년 1월 경남 최초의 한국인 목사가 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상)에 의하면 목사는 1904년 5월 27일 부산진교회 최초의 장로가 되었고 1905년 합동공의회에서 전도위원회를 설립할 때 경상지역 최초의 장로였다.

1914년 1월 13일부터 1917년 8월까지 부산진교회 목사가 되었고 1919년 1월 13일 시무장로가 되었다. (부산진 교회 100년사) 남해지역에서는 연와제로 예배당을 신축한 기록이 있다. 

YMCA 창립멤버인 한규상과 함께 뜻이 맞아 서부 경남 일원에서 애국 강연을 하다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았고 사천과 남해 교회에서 시국 강연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석방되기도 했다.

한규상 선생은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기 때문에 일경은 단순히 신앙을 위한 강연으로 보지 않고 일제를 비판한 강연으로 판단하고 유치장에 감금하고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동아일보 1922년 2월 3일자에도 보도되었으니 심취명, 한규상 등은 신도 수백 명을 모아 놓고 애급(이집트)에서 출애급해서 탈출한 이스라엘처럼 조선도 일제를 벗어나 해방된다고 강연한 것은 일제를 반대하는 반역으로 본 것이다.

목사는 일제 경찰의 고도의 기술적 고문을 받아 신체적 결함을 얻었고 점차 활동을 하지 못하고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활동이 미미해진 상태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김봉숙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요한, 순희, 요섭, 바울(보라), 은섭(은사) 등의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