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신용구(申鏞九)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진주시 평거동
시대
-

상세내용

▶ 신용구(申鏞九)

신용구 선생은 경남 진주시 평거동 115번지에서 평산 신씨 신종균과 남원 양씨 슬하에서 장남으로 1901년 혹은 포덕 24년 9월 27일 태어났다. 도호가 묵암이다.

출신지가 고성이다. 산청 신안면이다. 진주 평거동이다. 여러 설이 있다.

천도교에 입도하여 주간 포덕사가 되고 주관, 도을 거쳐 주임, 종법사가 되었으며 당중앙위원 상무 종법사를 역임했다.

처음에 을사조약 이후 만주와 중국으로 건너가 국내외 정세를 살피고 귀국해 1914년 6월 4일 항일투사요 천도교 교구장 황태익(항일투쟁으로 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고 3·1운동에 동참하고 옥고를 치르고 이어 항일투쟁에 앞장선 분이다.

1921년 3월 인생문제는 인내천주의로 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것을 시작으로 1937년까지 전국을 다니며 애국 강연과 교리 강연을 실시했는데 가는 곳마다 청중들이 수없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주 강사는 이돈화 선생, 신용구 선생, 김기전 (90년에 건국훈장 추서)선생, 구중회(창녕 영산 3·1운동 공적으로 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선생 등이었고 부산, 경남에서 강연할 때 주로 신용구, 황태익,박태근, 장진수 등이 강연했다.

1928년 1월에는 천도포교인회를 창녕, 함안, 창원, 고성, 통영, 사천, 남해, 진주 등지에서 강연을 실시했고 남해지역에 천도교가 널리 확장한 것은 신용구 선생의 공적이 작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일제 경찰에 잡혀 억지로 머리를 숙이고 귀가하여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천도교 이사를 역임했다.

1959년 천도교 교령으로 당선되어 5회(6대~10대)이상 교령 직을 수행하고 1963년에는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1967년 2월 10일 별세하여 고성군 고성읍 남산에 안장되었고 1969년 10월 10일 문하생들이 묘비를 세웠다. 부인은 안동 권씨 권오수의 딸 권구화이다.

남해군 천도교 발전에 기여하고 상당한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