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박대영(朴大榮)
상세내용
▶ 박대영(朴大榮)
박대영 선생은 경남 사천 선구리에서 1914년 9월 25일 태어나 남해군 남해읍 북변동에 거주하며 활동했다.
남해 출신 한인식(부인 김계정은 2020년 대통령 표창), 박종홍 등과 남해공산전위동맹을 조직 활동했고 신문기자로 1933년 4월 경남기자대회에 참석하고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도주했다.
선생은 노동운동가로 부산과 삼천포에서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2번 이상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른 이금복(독립운동과 노동운동으로 대통령 표창 수상) 여사의 전남편이다.
삼천포 출신 배장영은 공산주의자 박대영 선생의 지도 교양에 의해 사상적 좌익화의 실천 투쟁을 기획하고 노동 체험 동지의 획득에 노력했다.
삼천포에 소재한 일제주구의 청수정미소 인부로 취업한 자들의 불만을 선동하여 2월 14일 고용주에 대하여 쌀값 폭등을 이유로 평균 임금 10전의 인상요구서를 제출했다.
노동자 20여 명을 규합하여 동맹파업을 결행하여 고융주에게 강경 요구했고 임시 인부들을 고용하여 계속하고 파업 인부 측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파업을 이틀동안 계속하자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 박대영, 배장영 선생 등은 구류처분을 받았다.
삼천포읍 동리의 최효근, 정한영(건국훈장 추서), 배장영 등 28명은 권대형(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협의회 사천지역의 박대영의 지도에 의해 1931년 5월 중순에 삼천포에 소재한 빈집에서 회합하여 비밀 결사 독서회를 조직해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할 목적을 악양함을 기도했다.
삼천포전기회사 석탄 하역인부 동맹 파업을 획책하는 등 실천투쟁을 하다 발각돼 각기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
선생의 재판결과는 알 수 없으며, 광복 이후 남해군에서 사회주의 계통에서 활동하다 체포되는 등 활동한 기록이 있다.
경남도 인민위원장은 거제 출신 윤일이었는데, 보고하기를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1945.11.20.~22.)와 10월 5일 경남도인민위원회가 성립되자 각 시군면 단위까지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남해군 책임자는 김석종이었다고 했으나 남해읍 출신 한인식, 하동 김대영 등이 앞장서고 박대영이 남해군 서면위원장이 되게 하고 전 부인이었던 이금복 여사는 삼천포지역 동맹위원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