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김일문(金日文) 호 : 봉암(奉菴)

내용
미 포상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삼동면
시대
-

상세내용

김일문 선생은 삼동면의 하상근, 남해면의 문창일, 김성준, 강한문, 박경수 등과 1919년 9월 남해청년회에 가입하여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각 지역 연사들을 남해로 초빙해 강연을 하는 등 활동했다. 1920년대 양명, 고현, 고성군 하일보통학교 등지에서 훈도(교사)로 근무했다.

일제의 폭압 장치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고 교장을 성토하기도 했으나 일제의 발악을 혼자 힘으로 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슴속의 포부를 토로했다.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은 일제보다 우수한 민족이며 고대로부터 일본을 가르쳐 왔다고 훈육했다. 일제 경찰이 나타나 불온사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서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했다. 강제로 사직서를 쓰게 하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1935년 10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하고 삼동면 물건리에 거주했다.

천도교 인내천 사상을 종지로 하고, 따라서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목적으로 지상 천국 건설을 위해 활동한 분이다.

남해 천도교가 진주 대교구에 속하여 남해 교인들이 낸 성미를 모아 10년간 납부했으며 진주 대교구는 천도교 본부에서 방문하는 임원들을 대접하고 종법사와 전교사로서 강연비를 지급하는 일을 했다고 전해온다.

1928년경 남해 종리원은 교인 회의를 개최하여 포덕회를 조직하니 회장은 삼동면 물건리 김일문씨가 당선되었다.

현재 남해군 설천면 비란리에 천도교 교당 사무실이 있고 교인 수 약 4백여 명이라고하며 대표자 도정은 정형실이다. 또 고현면 대사리와 포상리, 기타 지역에 교당과 사무실이 있고, 교인 수는 각각200여 명이며 대표자 도정은 고정표, 김덕칠, 이경희 등이다.

부인은 정춘당 문화로 어진 성품으로 정성을 다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