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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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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정용교 (鄭鎔交)

내용
항일투사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남해읍 북변동
시대
1885~1948

상세내용

▶ 정용교 (鄭鎔交. 1885.04.23 ~ 1948)

1919년 4월 3 ·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4월 2일 설천면 문의리에 사는 이예모가 하동에서 독립선언서를 구해 가지고 귀향하여 정순조·정학순·정몽호·윤주순등과 만나면서부터 계획했다.

그들은 4월 3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인근 동리에 이 계획을 알리었다. 이때 그도 이 계획에 적극 찬성하여 4월 3일 오후 8시경,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남양리 노상에 모여, 태극기를 선두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해읍을 향하여 시위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고현면에 이르렀을 때, 면장 김치관은 많은 시위군중의 위세에 놀라, 이 사실을 경찰주재소에 알리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김치관이 밀고한 사실도 안 시위군중운 명일에 남해읍 장날을 이용하여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약속하고 일단 해산하였다.

4월 4일 아침 일찍 그는 장꾼으로 가장하고 남해읍 장터로 나아갔다. 장꾼이 1천여명으로 늘어난 오후 3시경, 전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시위군중들은 약속된 신호에 따라 가슴에 숨겨 온 태극기를 꺼내들고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군중은 군청·우체국·학교·주재소에 들어가 관리들을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고, 경찰간부의 모자와 대검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

주재소의 경찰들이 어쩔 줄 몰라 하자, 김치관은 다시 결찰 경비전화를 이용하여 사천경찰서에 응원 요청을 하였다. 시위군중은 이 사실을 모르고 날이 저물어서 자진 해산하려 하다가, 김치관의 이같은 소행을 알고는 고현면 이어리에 있는 김치관의 집을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후 그는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이해9월23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어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