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의 항일독립운동가

남해군

김동우(金東寓)

내용
김동우(金東寓)
출처
남해문화원
출생지
창선면 상죽리
시대
1896~1988

상세내용

▶ 김동우(金東寓,1896~1988)

출생지 : 경상남도 남해
생년월일 : 1896년 1월8일
미국에 온 연도 : 1923년
학력 : 중국 금릉대학 졸업
경력 : 1919년 파고다공원 만세시위 참여 2년간 옥고 / 1923년 흥사단 가입 / 1937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서기 및 지방 대표 / 1941년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 서기 / 1942년 재미한족연합회 1차 대표 참가 / 1943년 맹호군 샌프란시스코 지대원 / 1925년이후 독립자금 지원 1988년 8월28일 별세
공적 :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

 

김동우는 1896년 1월 8일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상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3.1 운동이 전개될 때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2년여 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3년 금릉대학(金陵大學)을 졸업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뒤 흥사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안창호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모집에 앞장서는 한편 자신도 꾸준히 인구세·의무금·국민부담금·광복군후원금·국방공채·독립금 등을 출연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5년 4월16일에 인구세 1달러를 낸 것을 시작으로 1943년 11월 독립금 20달러를 전달하는 등 모두 43차례에 걸쳐서 모두 1천6백달러를 냈다. 그리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때에는 미국 국방공채를 1천달러어치나 구입했다.

1937년 12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상항지방회(桑港地方會) 서기 및 지방대표에 선임되어 국치기념일(國恥記念日), 순국선열기념식(殉國先烈記念式) 등을 주도하였으며, 1941년 이후 대한인국민회의 중앙집행위원, 서기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뜻있는 미주의 한인들은 이때를 조국 독립의 기회로 포착하고 무력 양성을 위한 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1941년 12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집행부는 한인국방군 편성계획을 미육군사령부에 제출하고, 로스엔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로서 맹호군(猛虎軍)을 창설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계획을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알려 1942년 2월 정식 인준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맹호군의 상항지대원(桑港支隊員)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2월23일 대한인국민회 제9차 대표회의에는 샌프란시스코 지역대표로 참석했고 중앙집행위원회(위원장 김호) 서기를 맡는 등 광복 후 준비에 참여했다. 이후 1966년 한인회를 창립할 때는 초대 회장을 맡아서 새 이민사회로 가는 원로인사로서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1988년 8월 28일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김동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7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