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남해군
최금경(崔金莖,1908~1957)
상세내용
▶ 최금경(崔金莖,1908~1957)
1908년(융희 2) 1월 25일∼1957년 4월 7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봉식(崔鳳植)‧최량(崔良)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삼동면(三東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가회동(嘉會洞)이다.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유학하였는데, 재학 시절에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공산주의에 뜻을 두어 학교를 그만 두었다.
1930년 7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 전국순회강연반 5개 중에서 중앙반의 연사(演士)로 순회강연을 펼쳤다.
1931년 3월 서울에 있을 때 조선총독부 실정으로 일어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한국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이 깊어지자, 같은 해 7월 김만유(金萬有)‧홍병모(洪炳模) 등과 함께 만보산사건의 진실을 담은 격문 2,000여 매를 인쇄하여 홍병모‧김만유‧이동재(李銅材)‧유영경(柳榮京) 등을 시켜서 서울의 각 학교에 배포한 후, 동맹휴교(同盟休校)에 들어가게 하려다가 체포되었다. 당시 체포된 인원 17명 가운데 6명만 치안유지법‧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0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