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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이야기

고려시대

남해현에 유배 온 최초의 유배객

내용
남해현에 유배 온 최초의 유배객이다. 왕진(王璡)은 문종을 폐위하고 현종의 넷째 아들 평양공(平壤公) 기(基)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동사강목(東史剛目)에 기록하기를 “문종 26년(1072) 7월 교위(校尉) 거신(巨身)이 모반하다가 복주(伏誅)되고 평장사 왕무숭은 유배되었다.
출처
남해문화원_남해유배인물 100인전
출생지
-
시대
고려

상세내용

남해현에 유배 온 기록들 중 처음으로 나타나는 유배객_왕진(王璡)

고려의 왕족. 현종의 손자로, 정간왕 왕기의 아들이다. 《고려사》 종실 열전 평양공(平壤公) 왕기편에 의하면 태위(太尉)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가계

조부 : 현종 원문대왕

조모 : 원혜왕후

외조부 : 안산현개국후 김은부

외조모 : 안산군대부인 인천 이씨

부친 : 정간왕

 

 내용

남해현에 유배 온 기록들 중 처음으로 나타나는 유배객은 왕족인 현종 넷째아들 평양공(平壤公) 기(基)를 왕으로 삼고자 당시 성군으로 알려진 현종 셋째아들 문종(휘)를 폐위시키려는 역모사건에 연루된 기의 아들 진(璡)이다. 아무리 대평성세(太平盛世)라도 음지에서는 악의 무리가 싹트고 있는 것은 세상 음양의 이치와 다름이 없고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 든 있는 일이다. 동사강목에 기록하기를 "문종 26년(1072) 7월 교위 거신이 모반하다가 복주되고 평장사 왕무숭은 유배되었다. 당초 교위 거신이 그의 무리 1천여 명과 더불어 왕을 패하고 평양공(平壤公) 기(基)를 옹립하려고 모의하였는데 그때 마침 기(基)가 죽으니 중지되고 말았다.

 

이때 기(基)를 웅립한 무리들이 문종인 휘(徽)를 폐위시키려고 역모 사실을 병사(兵士) 장선(張善)이 고변하자 왕은 역모 주동자 거신을 잡아 들여 주살하고 그 가족을 목 베게 하였으며, 기의 아들 진(璡)을 남해현(南海縣)으로 유배시켰다. 그리고 고변자 장선(張善)을 장군으로 발탁하였고 무숭 등은 역모에 관련되었으므로 안동(安東)으로 유배시켰다."

 

그리고 고려사절요 문중 26년(1072) 기록에도 이러한 내용을 남겼다.

“가을 7월에 병사 장선(張善)이 고변하기를 ‘교위 거신(巨身)이 그 도당 1천여 명과 더불어 왕을 페위시키고 왕제(王弟) 평양공 기(基)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니 명하여 잡아다가 거신을 처형하고 그 가족도 모두 죽이며 기는 이미 죽었으므로 기의 아들 진(璡)은 남해현에, 정은 안동부(경북 경주)에 귀양 보냈다가 얼마 뒤에 모두 죽였고 막내아들 영(瑛)은 어리므로 죽음을 면하였다.

 

이에 고변자 장선을 발탁하여 장군으로 삼고 장선의 형제와 자손에게도

각각 벼슬 1급을 내려 주었다. 윤달에 평장사 왕무숭을 안동부에, 장령(張寜)

궁주이씨와 수안 택주이씨는 곡주(황해 곡산)에 내쳤는데 역시 거신의 역모에 관련된 것이다."

 

동사강목과 고려사절요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고려사절요의 내용은 더욱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인동장씨 세보에도 장선에 대한 세계(世系)와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안동장씨 세보에 이르길 "시조 삼중대광신호위장장군 장금용의 선조는 태사공 장정필로 인동의 노전에서 강학했고 또 옥산부원군에 봉해진 사실도 알려져 있지만 세계가 실전되어 장정필을 도시조로 하고 장금용을 시조로 하였다. 장선은 강산삼중대광공 장금용의 아들로 문종 26년(1072)에 반란을 일으킨 거신 일당을 토벌한 공으로 금오위상장군에 올랐다. 후손들이 옥산(인동의 옛 지명)에 정착세거하면서 지명에 따라 본관을 옥산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다가 조선 말엽 옥산을 인동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으로 관향을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남해도 유배인물 100인전>

 

왕진(王璡, ? - 1072년)은 고려 중기의 왕족으로, 현종 순의 손자이며 정간왕에 추증된 왕기(王基)의 장남이다. 그의 누이 정의왕후 왕씨는 순종의 왕비가 되었으므로 순종의 처남이 된다. 순종은 문종의 장남으로 왕진과는 사촌형제간이 된다. 한편 그의 동생 낙랑공 왕영(樂浪公 王瑛)은 백부 문종의 딸 보령궁주(保寧宮主)와 결혼한다.

 

생애 : 왕손으로 태위의 벼슬에 올랐으며 1069년(문종 23) 왕위 유력 계승자였던 아버지 평양공 왕기가 자신의 형 문종보다 먼저 죽자, 문종에 의해 정간왕에 추봉되었지만, 그가 죽기 전 1061년(문종 15) 교위(校尉) 거신(巨身) 등이 문종을 폐하고 평양공 왕기를 추대하려는 쿠데타를 준비했던 일이, 1072년(문종 26) 병사(兵士) 장선(張善) 등의 고변으로 폭로되었다. 바로 문종은 거신(巨身)을 죽이고 그 족속(族屬)을 전부 사형시켰다. 한편 이미 죽은 평양공 왕기에게는 추증된 작위 및 생전 지위가 모두 박탈당했고, 왕진은 남해로 유배되었다. 단, 이때 그의 동생 왕영(王瑛)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형벌을 면하였다. 동시에 평장(平章) 왕무숭(王懋崇), 장녕 궁주 이씨(長寧宮主李氏), 수안 택주 이씨(遂安宅主李氏) 등도 평양공 추대 사건에 가담하였으므로 이에 왕무숭(王懋崇) 및 그 아들 왕정(王靖)은 안동으로 유배되고, 장녕궁주와 수안택주는 곡주(谷州)로 유배되었다. 한편 왕진은 유배된 직후에 사망하였다.

 

왕실과의 겹사돈 : 그는 고려 문종의 조카이면서 이중 겹사돈간이 된다. 누나 정의왕후 왕씨는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소생으로, 친사촌형인 순종와 결혼하였다. 이후 그의 남동생 낙랑공 왕영(樂浪公 王瑛)은 그의 사촌누이가 되는 백부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소생으로의 딸 보령궁주(保寧宮主)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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