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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이야기

고려시대

정세유(鄭世裕)

내용
왕조 : 고려 시대 : 고려 왕 : 명종 본관 : 하동(河東) 생몰연대 : 미상
출처
남해문화원_남해유배인물 100인전
출생지
-
시대
고려

상세내용

정세유(鄭世裕)

정세유는 명종 15년(1185) 형부상서에 올라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탄핵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얼마 후 복직되었으나 명종 24년(1194) 반역을 도모하다가 대정 이금대의 고변으로 아들 숙첨과 함께

남해에 두 번째로 유배되었다.

왕조 : 고려 시대 : 고려 왕 : 명종 본관 : 하동(河東) 생몰연대 : 미상

 

정세유(鄭世裕)는 하동군(河東郡) 사람이다. 명종(明宗) 때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있으면서 민(民)의 재물을 착취해 몇 번 내부(內府)에 바치자 왕이 그의 아들 정숙첨(鄭叔瞻)편에 손수 쓴 조서(詔書)를 내리며 칭찬하였다. 정세유가 돌아와서 아들 정윤당(鄭允當)을 전조(銓曹)에 제수(除授)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정윤당이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다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으로 제수하였다. 정세유가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승진하자, 당시 참지정사 상장군(叅知政事 上將軍)인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수들이 탄핵하여 아뢰기를, “정세유가 예전에 서북면에 있을 때 민에게서 명주실과 진기한 물품들을 거두면서 공물로 바친다고 사칭하고는 역마(驛馬)를 이용해 제 집으로 실어 보냈습니다. 또 상서성(尙書省)에 있을 때는, 영주(永州)의 향리(鄕吏) 최안(崔安)의 호장(戶長) 임명장[公牒]이 이미 완성되었는데도, 정세유가 수주(水州)의 향리인 최소(崔少)에게 뇌물을 받고 영(永)자를 수(水)자로 고치고 안(安)자를 소(少)자로 고쳐, 그 임명장을 최소에게 주었습니다. 일이 발각되었으니 법에 의해 마땅히 유배되어야함에도 잔꾀를 써서 처벌을 면했습니다. 지금 형부상서가 되어서는 먼저 관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늦게 오는 동료가 있으면 언제나 욕설을 퍼부어 내쫓았습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문서를 뜯어고쳐 법을 우롱하였으며, 뇌물의 많고 적음을 따라 사람의 죄가 왔다 갔다 합니다. 청컨대 먼 섬으로 유배를 보내시어 후세를 경계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는 조서를 내리자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뒤에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가 정세유가 반역[不軌]을 꾀하고 있다고 고발하자, 정세유·정윤당·정숙첨을 〈모두〉 남쪽 끝으로 유배하였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서북면병마사·형부상서 등의 벼슬을 지냈다.

1184년(명종 14) 서북면병마사로 있으면서 백성의 재물을 거두어 내부(內府)에 바쳐 왕의 환심을 샀다.

서북면에서 돌아와 아들 정윤당(鄭允當)을 전조(銓曹: 인사행정부서)에 임명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정윤당의 나이가 어리고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에 임명되었다.

1195년 형부상서로 승진하자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장군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군이 “정세유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있을 때 백성들로부터 명주실과 진귀한 물품 등을 거두어들이면서 공물로 바치는 것이라고 사칭하고 역을 통해 그의 집으로 옮긴 점, 형부상서로 있으면서 문서를 뜯어고치고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죄를 다룬 죄” 등을 들어 탄핵하여 섬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났다가 1194년 반역을 도모한다는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의 밀고에 의해서 그 아들 정윤당·정숙첨(鄭叔瞻) 등과 함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