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고려시대
정숙첨(鄭叔瞻)
상세내용
정숙첨(鄭叔瞻)
정숙첨은 당시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우의 장인으로, 순탄치 못한 정세에도 살아 남은 고려시대 문신이다. 일찍부터 관직에 올랐으나 명종 24년(1194) 아버지 정세유와 함께 반역죄에 연루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종 원년(1214)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1217년 최충헌의 살해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하동으로 유배되었다. 후에 유배에서 풀려나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왕조 : 고려 시대 : 고려 왕 : 명종 본관 : 하동(河東) 생몰연대 : 미상
정숙첨(鄭叔瞻, 생몰년 미상)은 고려 중기 ~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그는 최씨정권의 초대 집권자인 최충헌의 부하이자 2대 집권자인 최우의 장인이기도 했다. 일찍이 벼슬에 올랐으나 명종 24년인 1194년에 무고로 탄핵되어 유배를 갔고 신종 때 유배에서 풀려났다.
본관은 하동(河東)으로, 형부상서 정세유(鄭世猷)의 아들이며 최우(崔瑀)의 장인이다. 하동정씨는 최씨정권을 지탱해주었던 4대 가문, 곧 경주김씨 · 철원최씨 · 정안임씨 · 하동정씨 중의 하나로서 최씨정권기 명문 벌족이었다.
1194년( 명종 24) 아버지가 반역한다는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의 무고로 형 정윤당(鄭允當)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 1204년( 신종 7)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서 승도(僧徒) 등이 최충헌(崔忠獻)을 암살하려고 하자 수창궁(壽昌宮)에 들어가 이를 구원하였다. 1206년( 희종 2) 좌승선(左承宣)으로 있을 때, 왕이 책명(冊命)을 받기 위해 정숙첨을 금사(金使)에게 보내 행례소(行禮所) 문제를 상의하였다. 1215년( 고종 2) 형 정진(鄭稹)과 함께 반역을 도모한다는 예부원외랑 윤세유(尹世儒)의 모함을 받았으나 무고임이 밝혀졌다.
이듬해 거란유종(契丹遺種)의 금산왕자(金山王子)가 무리를 이끌고 침입하자, 참지정사(參知政事)로서 행영중군원수(行營中軍元帥)가 되어 부원수 조충(趙冲)과 함께 염주(鹽州: 황해도 연안) · 배주(白州: 황해도 배천)의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흥의(興義) · 금교역(金郊驛) 사이에 진을 쳤다가 군중(軍中)이 놀라 달아나자 다시 국청사(國淸寺)로 옮겼다.
1217년 최충헌 모살사건에 연루되어 원수직에서 파면되고 하동에 유배되었다. 이는 정숙첨이 군중에서 최충헌이 왕실을 쇠잔하게 하고 적을 불러들였다고 비방한 것에서 빌미가 된 것인데, 이로 인해 최충헌이 죽이려 하였으나 최우가 힘써 구해주었다. 최충헌이 사망한 후 최우가 집권하여 최충헌의 실정을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최충헌세력을 제거할 때에도 정숙첨은 살아 남았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 정숙첨은 원수가 된 뒤로 군사들로부터 뇌물을 많이 받아 재산을 축적하여 군사들의 불평이 잦았다. 뒤에 평장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