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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이야기

조선시대

예종조 남해 유배객_백시, 이효상(李孝詳)과 이효정(李孝精)

내용
왕조 : 예종 휘 : 이효상 / 이효정 본관 : 미상 생물연도 : 미상 유배기간 1469~미상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이시에 난
출처
남해문화원_남해유배인물 100인전
출생지
-
시대
조선 예종조

상세내용

왕조 : 예종 휘 : 이효상 / 이효정 본관 : 미상 생물연도 : 미상 유배기간 1469~미상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이시애의 난

 

역적 이시애의 난으로 이효종의 처 백시와 더불어 예종 1(1469)에 이효순(李孝順)의 형 이효상(李孝詳)과 이효정(李孝精) 역시 남해현의 종으로 영속되었다.

 

예종실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 중략... 북청인 이효순(李孝順)의 형 이효상(李孝詳)과 이효정(李孝精) 역시 남해현의 종으로 영속시키고,.. 하니, 임금이 원상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다.

 

고령군 신숙주와 영의정 한명회,  영성군 최항, 인산군 홍윤성, 창녕군 조석문,  좌의정 김질, 좌찬성 김국광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이시애 등은 다른 반신의 비교가 되지 아니하니, 군사를 일으켜 나라에 항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때가지나 겨우겨우 평정하기는 하였으나, 당시에 절도사 이하를 죽인 것이 무려 수백 인이 되었으니, 모두 다 나라의 현량들이었습니다. 선왕께서 처음에 성을 합락하여 성중의 사람을 도륙(屠戮)하려고 하셨으나, 이시애가 이미 잡히었으므로 군사를 놓아 보내는 날에 모두 잡아서 처참하지 못한 것을 매우 한하셨습니다. 지금 만약 그 연좌인들을 가까운 도에 두게 되면, 비단 법과 같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악을 징계할 바가 없습니다. 또 위협을 당하여 복종한 자들은 이미 모두 치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연좌인은 그 수종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극변에 유배시키고, 나이가 차지 않은 자로 10세 이상은 모두 유배시켜서, 만세에 귀감이 되게 하소서. 대역을 다스리고 해가 지나도록 죄형을 정하지 않으니 실로 지완함이 있습니다. 마땅히 속히 정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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