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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이야기

조선시대

성종조 남해유배객 : 김덕중, 박호산, 최숙정, 이근필, 김시생, 박형근

내용
왕조 : 성종 회 : 김덕중(金德中) 본관 : 미상 생물연도 : 미상 유배기간 : 1473~1481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강도죄, 왕조 : 성종 휘 : 박호산외 2명 본관 : 미상 생몰연도 : 미상 유배기간 : 미상~1481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미상, 왕조 : 성종 휘 : 김시생(金始生) 본관 : 미상 생몰연도 : 미상 유배기간 : 미상~1484 유배시관직 : 내관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
출처
남해문화원_남해유배인물 100인전
출생지
-
시대
조선 성종조

상세내용

성종(成宗생몰 : 1457~1494) (재위: 1469. 11~1494. 12. 251개월)

 

정황(政況)

 

예종이 14개월의 젊은 치세로 요절하자 세조비 윤씨는 자기의 장자인 의경세자(덕종)의 둘째아들 자울산군을 왕위에 앉혔는데 당시 13세였다. 자울산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권력자인 한명회의 사위였고 신숙주, 구치관 등의 원상도 동조했기 때문이다.

 

당시 왕실세력의 중심인물인 구성군은 성종 1년(1470)에 유배되었는데 구성군은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아들로 문무겸비한 인물이었다. 세조가 매우 총애했고 이시애의난 때는 사도병마도총사로 난을 평정하고 돌아와 오위도총부 총관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영의정에 특서되었다. 당시 28세로서 예종이 죽자 위협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성종 25년의 치세를 요약하면, 호패법 폐지, 불교 장의제도인 화장풍습을 없애고, 6촌이내 결혼 금지 등 숭유억불 정책 실시하였으며, 편찬사업으로는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동문선, 오례의, 악학궤범 등을 저술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가운데 성종은 퇴폐풍조를 낳기도 했다.

 

성종의 규방출입으로 왕비 윤씨가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는 사건이 발생하여 페비사건으로 비화되었고 이 윤씨 사건으로 연산군 조에 정쟁의 불씨로 작용되어 결국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고려로부터 조선 초까지 100여 년간에 반포된 여러 법전, 교지, 조례, 관례 등을 총망라하여 세조 때부터 편찬해 오던 ‘경국대전’이 1458년에 완성되었고 각종 문화 서적들이 발간되어 문화의 질을 높였다.

 

 

성종조 남해 유배객

 

왕조 : 성종 회 : 김덕중(金德中) 본관 : 미상 생물연도 : 미상 유배기간 : 1473~1481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강도죄

 

김덕중은 성종 4년(1473)에 안윤손의 집을 위협하여 강도질 한 죄가 모두 율문(律文)에 의하여 참부대시(斬不待時)에 해당하며, 수교(受敎)에 의하여 처자는 변읍의 노비(奴娜)로 영구히 소속시켜야 한다는 형조의 삼복(三覆)에 따라 남해로 유배되었다.

 

죄를 지은 성종 4년조의 기록에는 죄의 진상만 적혀있고 남해 유배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성종 12(1481) 성종실록에 의하면 남해(南海)에 정속(定屬)된 덕중(德中)을 놓아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김덕중은 강도죄로 남해에 유배 왔음을 알 수 있고 또한 남해에 충군(充軍)한 박호산, 최숙정, 이근필도 같은 해에 풀려나게 되었다.

 

성종 4년(1473) 실록이다.

 

형조(刑曹)에서 삼복하여 아뢰기를, “진주의 죄수인 김덕중, 황민, 강금산, 유산, 김생, 김산수, 막생, 곽오을미는 안윤손의 등의 집을 위협하여 강도질을 하였고, 기장의 죄수인 원경은 강도와 통모하고 이어서 와주(窩主, 도둑이나 노름꾼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죄가 모두 율문에 의하여 참부대시(斬不待時. 시기를 가리지 않고 참형하는 것)에 해당하며, 수교에 의하여 처자는 변읍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켜야 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 12년(1481) 3월 14일 성종실록이다. 형조에 전지하여, 남해(南海)에 정속한 덕중, 곤양에 정속한 김자산, 관남, 하동에 중속한 은이, 함평에 정속한 중이, 금이, 남해에 충군한 박호산, 최숙정, 이근필, 강계에 충군한 황우, 유석지, 고성에 영속한 김부, 진도에 영속한 동질금, 종래를 놓아 주게 하였다.

 

<문헌 : 成宗實錄>

 

 

성종 127권, 12년(1481 신축 / 명 성화(成化) 17년) 3월 14일 o 傳旨刑費, 故南海定愚德中"

陽定刷金自山 双滿' 河東定局銀伊' 成平定胭家伊.金伊' 南海充事朴好山 光淑丁 李崖粥' 江

界充軍黄右 到石知 圆城水蹈盒大' 珍岛水晨同叱金: 從来

 

 

왕조 : 성종 휘 : 박호산외 2 본관 : 미상 생몰연도 : 미상 유배기간 : 미상~1481

유배시관직 : 미상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미상

 

성종 12년(1481) 3월 14일 실록에 의하면, 형조에 전지하여, 남해(南海)에 정속한 덕중, 곤양에 정속한 김자산, 관남, 하동에 종속한 은이, 함평에 정속한 중이, 금이, 남해에 충군한 박호산, 최숙정, 이근필, 강계에 충군한 황우, 유석지, 고성에 영속한 김부, 진도에 영속한 동질금, 종래를 놓아 주게 하였다.

 

박호산, 최숙정, 이근필은 무관으로 남해에 충군되었음은 실록에 의해 알 수 있지만 언제 충군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남해로 유배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왕조 : 성종 휘 : 김시생(金始生) 본관 : 미상 생몰연도 : 미상 유배기간 : 미상~1484

유배시관직 : 내관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미상

 

김시생은 내관이었는데 남해로 유배를 왔다가 성종 15년(1484)에 방면하였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이다.

 

의금부에 전지하여, 남해(南海)에 유배(流配)된 내관(內官) 김시생을 방면하게 하였다.

<문헌 : 成宗實錄>

 

 

왕조 : 성종 휘 : 박형근(朴亨根) 본관 : 미상 생몰연도 : 미상 유배기간 : 미상~1484

유배시관직 : 첨절제사 최종관직 : 미상 유배사유 : 노략질 당한 죄

 

성종 15년(1484) 3월 29일에 성균유학(成均幼學) 박감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저의 아비 박형근이 훈융첨절제사(訓戎僉節制使)가 되어 인물이 노략질 당한 데에 좌죄되어 장() 1백 대에, 남해현(南海縣)에 충군되었는데, 조부모의 나이가 모두 82세이며, 온갖 질병이 겹쳐서 한 번 보고 결별하고자 합니다.”

하니, 명하여 박형근을 방면하게 하였다.49)

 

박형근은 무관으로 첨절제사를 지내다 노략질 당한 최로 장형 1백대에 남해현에 충군으로 유배되었는데 아들 박감이 부친의 죄를 인정하면서 조부모의 나이가 82세의 노령인데 질병이 전처 언제 죽율지 모르니 한번만 이라도 상명하기를 청하자 방면시켜 주었다.

 

<문헌 : 成宗質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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