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동문발자취 - 이수철
상세내용
실력, 친절에 겸손함까지 두루 갖춘 '진정한 의사'
▶ 에피소드
시간의 수레바퀴를 40여년 되돌려 1970년 겨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 연고도 없던 서울에 올라온 한 시골 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청년'이라 부르기엔 다소 앳된 얼굴의, 그러나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수험생 앞에 같은 동네 살던 이웃집 형이 물었다.
"너, 무슨 과에 가려고 하니?"
"의과대학에 지원했습니다"
"왜, 법과대학을 가서 검사나 판사가 되지 않고..."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그래서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런 (엄청난) 일을 저는 감히 할 자신도 없고,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응, 그렇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대 의과대학을 입학할 실력이면, 서울법대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던 때였다. 남해초등학교(52회)와 남해중학교(17회)를 다닐 때부터 공부 제일 잘하던 학생으로 널리 알려졌고,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던 터라, 이웃집 형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법과대학을 지원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철저한 서열주의와 권력 지향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때 그 청년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서울의대 입학시험에 합격, 그렇게 힘들다는 의과대학 6년과 수련의 생활을 거쳐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그가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30년 가까이 신경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수철 동문(남해중 17회)이다.
▶ 쉽고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의사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의료보장제도(의료보험)가 잘 돼 있고, 의료 서비스와 의료 체계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지만, 불과 10 - 20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 아픈 사람이 한 사람 생기면, 온 집안이 뿌리 채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게 걱정거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고, 다른 하나는 환자 자신이나 가족이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 전망에 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질병과 치료(방법)에 관한 정보 부족을 절감하게 된다.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이것저것 묻게 된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리라.
이수철 동문도 다른 의학도나 의사들 못지않게 진료 시간 외에 주위 친인척이나 지인들로부터 질병과 치료 방법 등에 관한 개인적인 자문과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설명은 한결같이 친절하고 자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사람 몸에는 콩팥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가 고장이 나서 못쓰게 돼도, 나머지 하나가 성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최악의 경우 나머지 한 쪽 콩팥의 4분의 1만 남아있어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우리 몸에 관한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어떻게 이렇게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 결론 - 진정한 의사
이런 설명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우리 인체와 장기가 오묘하고 신비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사람의 몸은 스스로 질병을 이겨내는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낫는 경우가 생긴다는 뜻으로도 들리기도 한다.
그에게 후배가 묻는다.
"그렇다면, 의사가 직접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거나 낫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돌아온 그의 대답. "의사가 질병 자체를 낫게 하거나 치료하는 게 아닐세. 의사는 사람 몸이 질병을 이겨내거나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일세."
의학정보가 넘쳐나고, 의료 행정이나 서비스가 날로 투명해지는 요즘이야 이런 설명을 의사로부터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사실 위에서 이수철 동문이 말한 내용은 30 - 40년 전에 그가 이웃 동생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는 의사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망치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진정한 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