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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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문무를 겸비한 영원한 빨간 마후라
문무(文武)를 겸비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동문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분들이 상당수 계시지만, 그 중에서 박종권 동문(남중 2회, 남해농고 5회)은 단연 두드러진다.
1969년 8월 29일, 이날은 우리나라 안보 역사에서 대단히 뜻 깊은 날이다. 바로 이날 팬텀기로 불리던 F-4D 전투폭격기 도입식이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이후 팬텀기는 40년 이상 우리 영공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북한이 보유한 미그(MiG : 공동설계자 Mikoyan과 Gurevich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지음) 23기 등이 감히 우리 영공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데 1등 공신이었다.
1968년 1월 2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 30여명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데 자극 받은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팬텀기를 도입하게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우리나라가 팬텀기를 제작한 미국을 제외하고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팬텀기를 보유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항공자위대는 1970년 도입을 결정하여 1973년에 F-4E를 도입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박종권 동문에게도 이 날은 기념비적인 날임에 틀림없다. 1961년 공군사관학교(9기)를 졸업하고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공군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팬텀기를 몰고 우리 영공을 지킨 박종권 동문은 바로 팬텀기 도입식이 열렸던 공군 제11전투비행단 단장을 지낸다.
여기서 그의 이력을 잠깐 살펴본다.
남해읍 북변동에서 태어나 남해초등학교, 남해중학교(2회), 남해농고(5회)를 차례로 졸업하고 그 어렵다던 공군사관학교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다.
박 동문이 공군 조종사로서 또 지휘관으로서 걸어온 길은 멋지고 화려하다. 공군 제30방공관제단장을 시작으로, 공군 제11전투비행단장, 공군본부 정보참모부장과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장, 국방부 군비통제실장 등을 차례로 지낸다. 박 동문은 공군의 주요 보직만 거친 게 아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남북고위급 예비회담 군사대표로도 활약했다.
박 동문은 학구열도 대단하다. 국방대학원을 수료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인사조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해정대학원 국가정책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한 것도 모자라, 환갑을 넘긴 나이인 1998년에는 항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도 밟는다.
그래서 그가 30년 이상 몸 담았던 공군을 떠난 뒤 맞이하는 제2의 삶도 알차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도 가입하고 한국군사학회 이사, 세종연구소와 극동문제연구소, 그리고 미국 스탠퍼드대 안보연구소 등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안익태 기념사업재단 이사와 한국 항공진흥협회 상근부회장도 지냈다.
박 동문이 쓴 논문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만하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대응책(국방대학원지, 1982), 모티베이션 관리에 관한 실증적 연구(경남대 경영대학원, 1988), 국방자원의 적정배분에 관한 연구(서울대 행정대학원, 1990)등이 그가 쓴 논문들이다.
그가 국내와서 받은 각종 훈장들은 그의 성실하고 치열한 삶과 기여에 대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보국훈장 삼일장(1979), 대통령표창(보국공로 : 1983), 보국훈장 천수장(보국공로 : 1986), 광복회 감사패(국가유공자 복지향상 공로 : 2005) 등은 국내에서 받은 것들이고, 중국 정부로부터 1989년 군사 외교에 기여한 공로로 특종영수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하늘을 지키는 군인이면서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마지막 공직이었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을 지낼 당시 베트남 퀴논시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박 동문은 하늘만 사랑한게 아니다. 그는 고향 남해와 바다도 못지않게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의 호(號)가 바로 '해공(海空)'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태어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을 본받아 하늘을 지킨다"는 뜻일게고, "고향 남해(바다)와 공군을 모두 사랑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 아닐까? 박 동문은 부인과 사이에 2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이기도 하다. 한마다로 그의 삶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