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김선옥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43년 헌신적 師道의 길 - 교육계의 여성리더

전국 초등교육여교장협의회 총회 대회장 맡기도

 

 

흔히 남해인들은 정 · 경 관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출중한 인물들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재경남해여중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옥 회장은 이 시대의 師表로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42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선 교단의 교사로서, 학교교육의 관리자인 교감과 교장으로서, 때로는 장학활동 전문가로서 교육계에 귀감이 되고 있는 훌륭한 선배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영예의 교육 大賞과 2개의 근정훈장은 김선옥 회장이 얼마나 남다른 노력과 봉사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김회장은 원래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어머니의 고향인 남해로 이사와 잔뼈가 굵어진 남해인이다. 지금도 남해초교시절 5 ~ 6학년을 담임하신 강홍두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는 분, 잊을 수 없는 은사님이시라고 하며, 선생님께서 사범학교 진학을 권유하셨고 그 영향을 받아 진주교대에 진학,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교직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또한 어릴 때 만난 두 명의 초등친구인 공영애, 이남숙은 남해여중을 거쳐 각 각 남해농고, 진주여고, 진주실고로 진학하면서 잠시 떨어졌지만, 진주교대에서 다시 만나 지금까지도 우정을 나누고 있는 평생지기라고 한다. 두 분 모두 한분은 서예가로서, 한분은 시인으로서 알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시다.

 

당시 남해여중은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문을 열었는데 남해에서 여중이 처음 생긴 초창기라 다른 면에서 유학 온 친구들도 많았고 아무런 걱정근심 없이 즐겁기만 한 철부지 학생이었다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교육열 높은 남해인지라 친했던 친구들이 거의 외지로 떠나고 남해농고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김회장은 많이 슬펐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당시 남해농고는 '축산과'와 '농과' 두개 반이 있었는데 여학생은 농과에서만 받았고 여학생 수도 한 분단에 불과했다고 한다.

 

교대 졸업 후 처음 교사로 근무했던 곳이 남해의 고현면 도마 초교였는데, 이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신 것 같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여선생이 귀해서 특히 운동회 때 인기가 많았고, 사번학교가 교육대학으로 바뀐 과도기라 선배님들의 기대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이 때 교사인 부군을 만나 결혼하였고, 그 후 남해에서 초등학교 교사만 13년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인터뷰 때 동석하셨던 감충효 편집부위원장도 같은 교직자 출신이라서 두 분이 화기애애하게 애기꽃을 피는 중에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김회장이 교육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역시 경기도 성남시의 성남초교와 교장으로 부임한 후 창의적인 학교 운영을 통하여 해마다 도교육청의 우수학교(2001년), 최우수학교(2002년, 2003년)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분당의 서현초교 교장으로 부임하여서는  '서현에서 세계로'라는 슬로건 아래 타국 학교와의 자매결연은 물론,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가 좀 더 먼 미래와 넓은 세계로 향하는 마인드를 가지도록 교육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2004, 2005년 학교평가에서 최우수 학교로 선정, 대내외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2005년부터 2년 동안은 경기도 초등여교장협의회 회장을 맡아 '희망경기 교육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2006년 8월에는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 나갈 여교장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전국 초등교육여교장협의회총회의 대회장을 맡아 경기도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계의 저명인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모범학교장으로서의 성공비결에 대하여는 "창조적이고 특색 있는 학교 운영을 위하여 연구나 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선도적으로 운영하며 특히 교실 - 수업을 개선한 것이 후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며 겸손해 하신다. 그러면서도 그 성공비결의 바탕에는 평소 신념처럼 간직해 왔던 '희망과 도전'이라는 교육철학과 '항상 긍정적으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지금 김회장은 퇴직한 후에도 경기도 성남교육지원청의 각종 교육활동에 장학전문가로 참가하며, 지역사회 봉사자로서, 박물관대학의 배우는 학생으로서, 경기도와 남해를 오가며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일들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더욱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집안에 선생이 셋(부군 최창복 - 교장퇴임, 따님 - 현직교사)이니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며 환하게 미소 띤 김회장의 최종 멘트에 진한 행복이 베여 있는 것 같아서 필자도 행복한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