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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병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다시 출발,

인생 이모작을 국민 건강관리에 쏟다

 

 

 

수원의 한국건강관리협회 3층 집무실인 영상의학과실에는 경기도 도민의 건강관리에 책임을 지고 제2의 인생을 쏟고 있는 정규병 건강관리협회 경기도 지부 건강증진의원 원장님이다.

그는 2012년 2월에 정년퇴임식에서 "고대병원에 몸담은 재직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많은 것이 가능했던 것은 부족한 저를 도와 함께해 주신 동료선 후배 교수님들을 비롯한 병원식구들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며 "한편으로 아쉽지만 JCI인증 등을 계기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병원을 응원하면서 떠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퇴임사를 전했다.

서울의대를 나와 대한복부영상의학회장, 한국건강관리협회 이사, 대한의료영상진단협회장 등을 역임해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국내외 의학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다.

퇴직과 동시에 다시 새 출발점에 섰는데 30여 년 간 고대병원에 몸을 담고도 쉬지 않고 바로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 지부의 원장으로 취임해 올 해 2년째를 맞고 있다.

인생의 이모작은 힘이 닿는 한 국민건강관리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 남해 농고 2학년 때 경남고에 진학,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하다

 

부모님은 남해읍에서 양복점(제일라사)을 운영하셨는데 교육열이 남달랐다.

58년 남해중학교 졸업 후 남해농고로 자연스레 진학했다.

6·25 전쟁이 막 끝난 무렵이라 학교에서는 공부보다 논에 가서 일을 더 많이 했다.

그 당시 농고에는 농고와 축산과가 있었는데 공부는 거리가 멀었다.

6·25 전후라서 남해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피난 온 유능한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농고 2학년 때 과감히 부산 경남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고1 때 5·16 혁명이 일어났는데 학교에서는 공부보다는 농사일과 혁명공약을 외우며 지내기 일쑤였다.

피난오신 선생님들은 세월을 아깝게 허비하지 말고 높은 곳을 향해서 살아가는 목포를 세워야한다며 용기를 볻돋워주었기에 용기를 내어 많은 날을 심사숙고한 후 부모님과 상의해서 내린 결론은 농고를 그만두고 당시 부산에서 명문고인 경남고에 진학하기로 하고 부산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나쁘진 않았기에 서울 공대를 지망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느끼기엔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의사의 직업을 보고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의대 지원을 권유,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내게 되었고 65년 서울대 문과대학 의예과에 합격을 했다.

대학을 다닐 때 부모님께서 등록금에 신경 쓰지 않도록 지원해 주었고 용돈 정도만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썼기 때문에 학창 시절은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71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해군 군의관으로 해병대에 근무 대위로 예편하였다.

74년부터 전공의 과정(방사선과)을 수료하면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고 고대병원 근무 중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82년 1년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 고려대학교 병원에서 33년 간 몸 담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 후 86 - 92 고대 구로병원 방사선과 과장을 역임했고 86년 대한복부영상학회 회장, 92 - 98년 고대 진단방사선과교실 주임교수 93 - 96년 대한방사선과 고시이사겸 고시위원장, 94년 - 현재 한국건강관리협회전문위원 산학협동연구소 전문의원, 국방부 의무자문관을 거처 98년 핵의학전문의 자격취득, 1998 대한초음파의학회회장과 2005 - 2008년 한국초음파의학재단이사장 2009 - 2012년 대한X검진협회회장을 지냈고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 지부 원장이다. 

학문적인 열정과 더불어 훌륭한 인격은 후배 교수 및 제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어 왔으며, 의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인술을 갖춘 의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후학들을 지도해 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2000년 이전에는 고대병원 방사선과에 X-ray가 방사선을 대표했는데 X-ray 필름이 은으로 만들어져 판독을 위해 가지고 다닐 때 상당한 무게로 고생을 하기도 했으며 판독실에는 판독기가 있어 X-ray를 판독기에 끼워 눈으로 확인을 했는데 요즘은 X-ray을 찍으면 바로 컴퓨터와 연결되어 즉시 해독을 할 수 있어 일이 편리해지고 쉬워졌다고 한다.

2007년 6월부터 방사선과는 영상의학과 개명되었고 영상의학과 X선, 초음파, 엠아르아이(MRI)를 이용하여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 의학으로 갈수록 영상의학과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영상의학과는 예전에 일반인들에게 엑스레이(X-ray)과로 불리었던 과로 X선 촬영뿐만 아니라 전자기장, 초음파 등을 이용하여 신체 부위의 영상을 획득하여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이용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다.

 

 

 

▶ 건강은 五福 중의 으뜸이다

 

五福(오복)은 書經(서경) 周書(주서) 洪範篇(홈범편)에 나오는 문장으로

五福(오복)은 一曰壽(일왈수)요 二曰富(이왈부)요 三曰康寧(삼왈강녕)이오 四曰攸好德(사왈유호덕)이오 五曰考終命(오왈고종명)이니라. 이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풀이하면 다섯 가지 복이 있으니

첫째는 수(壽)장수하는것, 건강을 뜻한다

둘째는 부(富)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

셋째는 강녕(康寧)편안하게 사는 것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선행으로 德을 쌓는 것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일생동안 평안하게 살다가 天命(천명)을 마치는 것.

이 다섯 가지이다

인간의 열망은 건강하고 오래살고 잘 살고 덕을 쌓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 건강관리는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해야 하는 몫이다.

고대병원 은퇴 후 다시 새 출발하는 일은 내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으로 국민의 건강관리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퇴직한 후 쉬지도 않고 바로 건강관리협회 경기도 지부에 원장으로 취임하여 사회봉사의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그는 현대의 건강관리는 단순히 몸의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건강관리로 폭이 매우 넓으며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근무하는 건강관리협회에서는 사회의 소외계층인 양로원, 고아원, 재소자, 군부대에 출장 점검을 가는데 의료장비가 갖추어진 대형버스에 의사나 간호사 팀을 이뤄서 나가는데 경기도는 지역이 넓어 몇 팀으로 나눠 다닌다고 한다. 

 

 

 

▶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다정한 할아버지가 좋다

 

동문이나 친구들에게 신사 중의 신사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서울서 만난 부인(박혜선, 65세)은 이화여대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는데 레지던트 시절 세쌍둥이(진경, 진원, 진희)를 낳아 화제가 되었고 딸 둘은 결혼하여 손자 4명에 손녀 11명 등 손주를 다섯 명이나 둔 유복한 할아버지다.

자녀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고 대학을 마쳤으며, 장남은 SK C&C에 근무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이가 들어도 일을 가지고 건강관리 봉사를 하고 주말이면 손주들과 놀이공원도 가고 맛난 것도 사 먹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는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다정한 할아버지로 남고 싶다고 한다.

고향 사랑도 남달라서 서면향우회 회장을 2년간 맡았으며 서울 부산의 교수들로 구성된 보물섬 남해포럼 창립 맴버로 고향의 미래와 발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토론과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보물섬 남해 포럼은 매년 8월 15일 남해에서 개최한다.

고향은 부모님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서 고향 사랑의 진심을 본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치열한 성격의 그는 말을 많이 아낀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예로 들며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는 것과 의견 충돌은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이라 여긴다.

편하게 단순하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며 조용히 살다가길 바라는 이 시대의 진정한 신사이다.

가시고기 암컷은 알을 낳고 얼마 있다가 죽고, 가시고기 수컷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 알을 보호하고,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자 바로 힘이 없어서 죽고....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영양분으로 내어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컷 가시고기처럼.

지금까지 받아왔던 걸 되돌려 주기 위해 건강관리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것이다.

그의 대화에는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구별할 줄 아는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검진 받을 사람을 직접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상 즉 그림자를 통해서 건강검진을 한 사람의 아픔을 느끼고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건강검진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모니터 화면을 보며 홀로지만 즐겁게 체크하며 일하고 있다.

한해 복지예산이 100조원이나 되는데 초기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병을 발견하고 치료하면 그만큼 병으로 인한 지출이 즐어드는 것이다.

조기 검진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 건강관리에 새로운 인생을 걸어도 손해보는 일은 절대 아니고 보람된 일이라 여기며 오늘도 조용히 그림자와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