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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복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자연자원보전 총괄 지휘자

 

 

 

 

필자는 신사역 부근에 있는 <철따라 고향맛>에서 이해복 <국립공원관리공단> 전 자원보전처장을 어렵게 만났다. 이 전 처장은 필자가 준비한 몇 가지 질문사항에 별로 개의치 않으면서 미리 준비한 이력서를 내밀어 놓고 성철 스님과의 남다른 인연과 그 분의 불기자심(不欺自心)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특히 이 전 처장은 성철 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종교인과 공직자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와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말고, 자신에게 엄하고 정직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라. 그것이 공직자의 도리다"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음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진솔한 마음은 실제로 그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보낸 의미 있는 삶의 궤적을 통해 확연히 아마도 이해복 전 자원보전 처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전생에 끊지 못할 깊은 인연을 맺은 모양이다. 이 전 처장이 <국립공원관리공단>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경상남도 사업소에 파견근무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 전 처장은 국립공원이 왜 필요하고 어떤 내용으로 어떤 관리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 지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체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968년 12월 31일 정부가 남해군을 포함하여 통영시와 거제시 일원을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는데, 그 당시에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도지사 관할 하에 있었다. 도지사가 도사업소를 두어 국립공원 업무 일체를 관리하였고, 이때 남해군은 상주면에 도사업소를 두어 탐방객이 많이 이용하는 상주 해수욕장을 포함하여 노량과 금산 등을 직접 관리하였다. 그런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지정된 지 19년 만인 1987년 7월에 국립공원공원관리체계가 또 다시 변경되었다. 자연생태계와 자연문화 경관을 잘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창설되어 그 동안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여 관리되던 국립공원의 관리제도가 국가의 직접 관리체계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이해복 전 처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창설될 때 20여 년간 남해군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지원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전 처장은 1987년 8월 18일 대한민국 국립공원1호인 지리산 관리과장(3급)을 시작으로 89년 2급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가야산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는 동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리체계를 변화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이 전 처장은 1990년 4월에서 1995년 9월까지 본부 운영과장, 보호과장, 관재과장, 그리고 기획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립공원에서 직접 느낀 문제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제도 마련과 정착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전 처장은 지리산소장(1995), 소백산소장(1996), 월악산소장(1999), 2001년 3월 1급으로 승진하여 한려해상소장 및 지리산소장(2001), 계룡산소장(2002), 그리고 본부 자원보전처장(2004)으로 근무하였다. 이 전 처장은 이 기간 동안 자연자원보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각종 불법 행위 단속 등 자연자원의 보호 및 보존과 관련된 핵심정책과 국립공원 관리체계의 수립을 총괄 지휘하였다.

 

이해복 전 처장은 국립공원 관리체계에 있어 무엇보다도 현장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나머지 자연생태계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제도마련과 정착에 노력하였다. 그는 1990년 11월 15일에 시행된 지정장소 외 취사 야영행위 금지 제도,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자연보호 및 훼손된 자연의 회복을 유도하기 위한 자연휴식년 제도, 1991년 11월 15일에 발효된 야간산행금지 제도의 수립과 정착을 위해 헌신하였다.

 

특히 이해복 전 처장은 1994년 본부 기획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향후 공원관리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전산화를 바탕으로 공원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전산실 설립을 시행하였는가 하면 2004년부터 본격적인 종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해 연해주산새끼 반달가슴곰 6개체와 2005년 북한산 반달가슴곰 8개체를 지리산에 방사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이전 처장은 산불진화 및 조난자 발생, 고지대 쓰레기 처리, 공증 순찰 활동 등과 같은 효율적인 공원관리를 위하여 헬기 활용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도입하였다.

 

이해복 처장은 매사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장 중심 활동가이다. 그는 남해농고시절 4H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알게 된 후 피폐한 농촌이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1966년 당시 남해농고를 졸업한 후 경상남도 지방공무원 농업직에 합격하여 남해군 공무원으로 재직한 22년 동안 농촌소득 증대, 식량증산 및 주택개량 산업 등 낙후된 농촌을 발전시키는데 열과 성을 다 하였다.

 

이 해복 전 처장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은 그의 포상 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모범공무원표창(경남도지사 3회), 내무행정발전공무원표창(91,12,31, 내무부장관), 국무총리표창(2000.10.5. 자연보호유공자), 충청북도환경인상(2000.12.30. 충북환경인연합), 국립공원사진공모전 4회 수상하였다. 이 처장은 신구대학과 한택식물원 등에서 <남북식물사진작가교류전>과 <한국식물사진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고, 현재 2008년부터 사단법인 <한국식물사진가회>회장을 맡고 있다.

 

이해복 전 처장은 남해읍 서변동에서 태어나 남해초, 남해중, 남해농고 축산과를 졸업했다. 이 전 처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박분심(52 전업주부) 여사와 두 자녀 충언(34 KT 네트웍)과 승미(32 한국체육중 교직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