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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최민렬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밀물 최민렬 동문의 서예 세계

 

 

 

▶ 들어가기

 

아호를 밀물, 해정(海亭)으로 쓰는 최민렬(65세, 남중16회, 읍 섬호 출생) 동문이 재경향우회 행사나 동창회 행사에서 서예작품을 시상품으로 선물하는 것을 필자는 여러 번 보아왔고 고향 주간지에 그의 활동 상황이 가끔씩 보도되는 것도 보아왔다. 그리고 이미 한국 서예계의 국전 초대작가로 그 위상이 정립되어 있는 상황을 일찍부터 감지한 터라 동문들의 활동상황을 다양하게 싣기로 한 편집방향의 달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민렬 동문에게 서예작품을 부탁하였다. 시원시원 했다. 당장 써오겠다고 했다. 10월 말로 모든 원고를 마감해야하는 발간위원회의 입장에서는 10월 23일 현재 일주일 정도 밖에 마감일이 남지 않았으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최민렬 동문은 전화상으로 회지의 이름, 공식적인 동문회의 명침을 물어보기에 마침 10월 18일 동문회 임원회의에서 통과된 회지의 재로 '망메세'를 알려주고 동문회의 공식 명칭을 알려줬는데 10월 23일 그날 오후에 바로 편집실 문을 두드렸다. 그가 봉투에 넣어온 소중한 서예 작품은 두 점이었는데 하나는 '망메세'라 크게 쓰고 그 오른 쪽에 작은 한문 글씨로 '在京 南海中 第一高等學校 總同文會誌 發刊紀念 無窮吉祥如意'(재경 남해중 제일고등학교 총 동문회지 발간을 기념하며 무궁토록 길하고 상스러운 일이 뜻과 같이 되어지다.) 

- 海亭 崔玟烈 - 이라고 씌여 있었고 또 하나의 화선지에는 發祥流慶(좋은 일이 피고 경사스런 일이 끝없이 흘러간다.)

- 癸巳 吉月 - 海亭 崔玟烈 - 이라고 씌여 있었다. 동문회와 희지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는 고마운 글이다. 설명을 듣다 보니 서예의 깊은 쪽으로 자꾸 빨려들어 가게 되었고 이 때 까지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최민렬 동문의 서예 세계와 인생관을 비로소 접하게 되었다.

 

 

▶ 짧은 시간이지만 긴 감동의 시간을 전해 준 밀물의 서예 세계

 

'세종대왕상'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문맹퇴치를 위해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상이며,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지목하는 문자, 또 최근 K-pop등과 함께 또 하나의 한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한글을 다양한 서체로 연구 개발하여 주목받는 한글서예의 대가가 바로 우리 곁에 있었는데도 우리 향우 사회나 동문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최민렬 동문을 동문회지에 소개하고 그가 펼치는 묵향을 나누어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하고 다행스런 일이라고 본다. 편집실에서 나눈 길지 않은 시간의 여러 이야기였지만 압축된 옛날 고향 소식, 고금의 서도 이야기, 앞으로의 서도에 대한 비전, 한글 서예의 다양한 흘림체에 대한 이야기, 고향의 문화창달에 대한 이야기들은 긴 감동으로 이어질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문화는 영원하기에...

 

 

▶ 고향을 향한 문화의 꿈

 

최민렬 향우는 고미술 쪽에 관심을 가져 40년 정도의 세월을 고서적, 고미술 품 등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는데 좀 더 전문적 지식을 키우기 위해 고미술품 감정협회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직접 고미술에 접근하여 고전 등 옛 서적을 공부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옛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82년부터 한글서예를 독학으로 공부를 해오다 1984년 운 좋게 근, 현대 한국서단을 이끌었던 서예의 양대 산맥인 일중, 여초 두 분의 선생님 중 일중 김충현 선생의 제자인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 문하생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30년을 배워오는 과정에서 지금의 국전 초대 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남해 중학교 시절에 음악을 잘해 성악가로서의 꿈을 펼쳐보기로 하고 서라벌고의 성악부에 시험을 쳐서 합격을 했다. 악기를 기본적으로 한 가지 갖추어야 되는데 고향에 있는 200평 정도의 논도 2만 3천원 밖에 안되던 시절이었고 악기는 어떻게 해보더라도 도시에서 공부하기 위한 하숙비 마련도 불가능해 성악을 향한 학교에서의 배움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그 후 여섯 번 직업을 바꾸면서 서예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서예에 대한 싫증을 느껴보지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성악을 하지 않고 서예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만약 성각가나 가수가 되었더라면 65세인 지금까지 하기란 어려웠을 것이지만 서예가로서의 65세의 나이는 이제부터 원숙의 단계로 들어가는 나이어서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서예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고 한다.

최동문은 2005년 5월과 2007년 11월의 두 번에 걸친 개인 서예 개인전을 펼침은 물론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경기미술대전 서예부문, 동아미술제, 전국휘호대회에 초대 및 심사에 참여하였고 KBS 전국휘호대회금상을 비롯한 수많은 실적과 대구예술대학교 서예과 겸임교수, 대전대학교 서예과 강사, 공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경기대학교 서예과 강사,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의 강사를 역임 하는 등 대학에서 19년간 강의 하였고 현 한국미술협회 이사(한글분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2009년 10월 한글창제 563돌을 맞아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옛한글 서예 묵보전'을 개최, 1446년 한글 창제부터 19세기말까지 궁중, 사대부가 혹은 여염집에서 썼던 한글필체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행사를 가져 국내 언론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후에 두 번째 인터뷰를 위해 종로 견지동 그의 서실을 찾았다가 선물 받은 서예 목보전 도록을 훑어보며 다양한 그의 필체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그 도록에 옛한글 서예 묵보전에 대해 '실로 환상적인 한글서예의 한 판 붓놀이 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광복 후 초유의 일이다'라는 서예 평론가 정충락 씨의 평에서 그의 서예의 명성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현재 남해읍 북변2리 마을회관 2층에 연구실을 개설하여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최동문의 계획은 남해에 서예박물관을 개관하여 고향 남해에 또 하나의 문화명소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한편 대구예술대학교의 서예과 겸임교수로 있을 때 길러낸 제자들이 서예를 더 배울 수 있는 곳을 마련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내려가서 가르치는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최민렬 동문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40년 동안 고서적, 고미술 품 등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는데 좀 더 전문적 지식을 키우기 위해 고미술품 감정협회에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서예작품을 포함한 고서적, 고미술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박품관을 고향에 마련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지은 건물이 일조권의 문제로 완공되지 못하고 남해읍 지역 아산 마을 근방에 40평정도의 건물을 구입하려는 단계에 있다고 했다. 

고향의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일을 그는 기획하고 실천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 다양한 한글 서체

 

가지고 온 소책자를 펼쳐보니 최민렬 동문이 쓴 한글이 각종서체나 한자의 서체가 아주 다양하였다. 명심보감이나 주역등의 구절을 각종 한글 서체로 쓰고 그 당시 썼던 한글 흘림체로 해석을 해 놓은 작품들이 즐비하였고 시인 묵객의 시문이나 장수들의 기개를 표현한 문장들을 한자의 다양한 서체와 한글의 고체로 해석해 놓은 작품도 많았다. 특히 고서적이나 조선 시대 한글로 쓴 편지글들을 찾아 재현한 자료나 백범 김구 선생의 좌우명을 독특한 한글체로 옮겨놓은 자료, 논어의 원문 구절과 독특한 한글 서체의 해석 등은 아주 다양하여 우리 한글이 이렇게 유려하고 현학적인 흘림체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의 이러한 연구 업적은 국내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 동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다져진 필력을 발휘해 재경남해중·제일고등학교총동문회지의 제호를 써온 것과 총동문회의 무궁 발전과 경사스런 일들에 대한 축원이 담긴 귀중한 글을 받들고 동문회지발간위원회의 편집실을 찾아준 최민렬 동문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그가 한국 서도계에서 쌓은 내공의 필력과 문화사랑의 도타운 정신이 고향 학창의 울타리인 읍성의 서문 밖 망운산 아래에 박물관이 개관되어 그가 40년 이상을 모아온 귀중한 문화적 보물들이 고향에 계신 분들의 관심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빌어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6시부터 개최되는 서예에 관련된 행사장으로 가야한다면서 힘차게 편집실 문을 나서는 그의 정렬적인 모습에서 이러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 밀물이 쓴 필적 소개

 

최민렬 동문의 서울 서실은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데 매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문을 연다고 하니 연락하고 한 번 들리기로 약속했는데 원고마감일 10월 31일 그의 서실을 찾았다. 묵향이 자욱한 서실에 그가 40년 동안 모은 고서적들이 즐비하다. 고미술품 감정가 협회에서 공부한 그가 수집한 몇몇 고서적 자료를 보며 수 백년전의 선인들 펼친 서도예술의 진수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 값나가고 공개하기 아직 이른 작품들은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그가 세울 고향 남해의 박물관에서의 만남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대략 이런 저런 준비할 것도 있고 5년 후면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낮에는 서예를 공부하는 분들이 많아 야간에 서실을 방문하였기에 고서적들과 작품들을 촬영하기 힘들었다. 지난 번 편집실에 가져온 안내 책자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몇 편을 감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