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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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재 - 라이프스토리
상세내용
내일이 더 기대되는
한국의 차세대 공간 디자이너
<르씨지엠> 구만재 대표는 한국적인 정서를 서구적인 논리로 표현해 내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한국의 차세대 공간 디자이너다. 그는 남해읍 북변동에서 태어나 해양초등학교(17회)와 남해중학교(38회)를 졸업했다. 그의 부모님은 남해군청 공무원과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고, 현재 남해읍에서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다.
구만재 대표의 올해 나이는 마흔 하나다, 현재 남해읍에서 포목점을 운영하고 있다.
구만재 대표의 올해 나이는 마흔 하나다. 이력과 경력이 젊은 나이에 비해 정말 놀랍다. 그는 프랑스 아뜨리에 페닝겐(Penninghen)에서 기초예술학을 수료하고, 파리고등실내건축학교(ESAG)를 졸업한 후 프랑스공인실내건축사(O.P.Q.A.I)를 취득했다. 공공디자인엑스포 조직위원을 지냈고, 현재 (사)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와 (사)한국공간디자인단체총연합회 이사이고, 경원대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과 MARU Design Awards Editorial 부문 수상, 2007 한국공간디자인 부문 대상, 리디자인 부문 대상, 한국공간문화재 참여 작가상, 그리고 2009 한국공간디자인 대상도 받았다.
대학시절 구만재 대표의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졸업 후 공간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히 외삼촌(최현기 말죽거리잔혹사 촬영감독)이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에 여행을 갔다가 자유로움이 넘쳐흐르는 파리에 색다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졸업 후에 무작정 파리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잠시 영화와 사진 분야를 기웃거리다 본인이 있어야 할 곳이 공간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간절해져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르씨지엠>은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이는 파리에서 지역을 나누는 단위인 6구라는 뜻이다. 파리의 6구는 우리나라 홍대 앞의 거리와 유사하다. 특정한 그 무엇 없이 어떤 몸짓이나 기호로 마냥 하나가 되는 느낌이 묻어나는 젊은과 지성이 넘쳐나는 곳이다. 말하자면, <르씨지엠>은 공간을 통해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면서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다의적인 기호 더미이기도 하다.
구만재 대표가 추구하는 공간 디자인의 개념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다. 그는 디자이너의 능력이 공간을 환상적으로 만드는 기교보다 인간 개개인이 소속하게될 일상화된 공간을 창출해 내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다. 공간 디자인을 접근하는 그의 코드는 인위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가공적인 공간 대신, 인간의 상상력이 침투 가능한 어딘지 모르게 비워있는 듯한 공간, 사용자의 변화에 적응하는 공간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특히 구만재 대표는 서구의 트렌드를 흡수하여 이를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변형하는 것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적인 것을 서구적인 논리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한층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르씨지엠>의 정체성을 이미 우리에게 체득화 되어 있는 한국적인 정신을 서구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에서 찾고 있다. 어떻게 보면 <르씨지엠>의 정체성 깊숙한 곳에 구만재 대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 남해의 정서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르씨지엠>은 처음에 파리고등실내건축학교 후배들과 함께 출발했다고 한다. 회사는 서초동 서울교대 옛 정문 인근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사무실에는 사람과 더불어 지내는 장소임에도 마치 탐험을 해야 하는 동굴마냥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벽면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진에서부터 70년대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동급생들의 개구쟁이 시절의 모습이나 작품 스케치 등 흥미로운 오브제들로 가득 차 있다.
구만재 대표에게 남해인들에게 특별하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첫 마디가 남해인들의 관심거리가 다양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남해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 자체가 정치, 경제, 교육 등에 너무 제한되어 있어 자유롭게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종종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경원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정식 교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는 꿈도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 과정에서 느낀 것은 구만재 대표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의 풍경들이 그의 기억의 저편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쯤이면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것 같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누비는 구만재도 고향으로부터 가슴을 저미는 귀소본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내심 놀랍기도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럼, 그렇지! 구만재도 사람 냄새 풍기는 남해 촌놈이구나! 시장 통에 소주 놓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고향 사람이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해양초등학교와 남해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지낸, 꿈이 있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우리의 동문 구만재가 있어 가슴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