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곽인용, 곽영우 - 모교의 역사, 추억, 주변의 유배문학이야기
상세내용
두 분이 들려주시는
동문회 뿌리 이야기
▶ 동문회의 뿌리를 찾고 그 맥을 이어가는 작업에 돌입하며
재경남해중 · 제일고 총동문회지 2집을 편찬하기 위해 2013년 1월 29일자로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어 편집위원장, 부위원장, 편집위원 5명, 편집간사 등 8명이 위촉되어 곧 실무 작업에 들어갔고 3월 15일 군향우회 사무실에서 동문회장, 사무총장, 동문회 간사와 합석하여 1차 편집회의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동문회지 발간계획의 초안이 발표되었고 전 위원은 일부 수정 보완한 내용으로 발간계획을 확정 짓고 알찬 동문회지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였다.
여기에서 일부 수정 보안이라 함은 소수의 동문이 축사하고 주소록을 첨부하는 동문회지의 차원을 탈피하여 보다 진일보한 다양한 편집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편집위원들의 의견을 토대로 기별로 추천된 동문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생생한 현장 소식을 스토리텔링하여 동문에게 알리기로 하는 것과, 정계, 관계, 학계, 문학계, 의학계, 예술계 등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동문들을 탐방하여 그 활동성을 동문 사회에 알리는 일, 모교의 역사성 재고, 역사적으로 각종 사화에 연루된 조정의 거목들이 우리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지역민들에게 끼친 영향을 알아보고 그들이 남긴 국문학사의 금자탑인 유배문학을 재조명 해보면서 동문들의 각종 자영업의 소개로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동문들의 업소에 대한 이용확대 유도 등을 첨가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4월부터 시작하여 금년도 9월 이전에 마무리 하고 몇 번의 수정 보완을 거쳐 11월 말까지 동문회지를 발간하여 12월 송년회에 배부하는 일정으로 잡고 주소록을 포함한 모든 사항을 4월초에 재경남해중 · 제일고 총동문회 부회장과 이사(각 기별 회장)님들께 등기 우편으로 발송하였고 그 뒤에도 1차례 우편물을 발송하였으며 몇 기 씩 묶어 편집위원 네 명이 수시로 각종 연락체계를 통하여 자료를 주고 받았으며 이 사항들을 웹하드에 공지하였다.
그 뒤 4월부터 2차 편집회의(4.15), 3차 편집회의(5.27), 4차 편집회의(7.15), 5차 편집회의(8.10)를 거치면서 주소 자료, 사진 자료, 문예 작품 및 기업탐방, 스토리텔링 등을 독려하다가 9월부터는 웹하드에 올라온 기사 및 사진 정리는 물론 출력, 가본 제작, 1차 교정, 광고 문안 협의 등의 업무량이 폭주함에 따라 편집 실무 1인, 재정 실무를 맡은 총동문회의 사무총장의 상근 체제로 돌입하면서 총동문회지의 원활한 발간을 위하여 한시적인 편집실을 개소하였다.
▶ 곽인용(남중2회/제일고19회) · 곽영우(남중3회/제일고20회) 동문님을 찾아뵙게 된 경위
● 동문회 단절의 역사를 막기 위해
편집회의 시 재경남해중 · 제일고총동문회의 통합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연결해 놓지 않으면 이후로는 영영 힘들어지리라는 예상을 한 결과 흩어져 있는 통합 이전의 자료를 최대한 찾아보는 외에 연세 많으신 선배 동문께서 생존해 계실 때 구술 자료라도 받아 역사를 이어가야 된다는 절박함이 대두외었다는 상황 설명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일은 필자가 해보겠다는 의사를 편집위원들에게 밝히고 김재일 편집위원장과 협의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등 조만간 몇 분의 선배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 후배의 눈에 비친 선배님들의 이미지 찾기
우선 곽인용 선배님과 곽영우 선배님께 부탁을 드렸다. 본 동문회 고문을 맡고 계신데다 동문회 행사에 참가해보면 두 분은 항상 동문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단절되려는 동문회의 연결 고리 내지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구심체 역할을 하시는 것을 필자는 여러 번 보아왔고 동문회 사회에서도 후일담을 많이 들어온 바다. 곽인용 선배님께서는 특히 임원의 임기가 끝나 새로운 회장을 선출할 때 임시 의장이 되어 새로운 체제를 출범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곽영우 선배님께서는 재경남해농업고등학교동문회를 창립할 때 큰 역할을 하신분이다. 그러나 이 두 분들은 큰일을 성사시켜놓으시고는 항상 뒤로 물러나 있으시면서 지원을 하신 분들이다.
● 두 분의 근황
필자와 김재일 동문님은 7월 22일 저녁 동대문 근처의 향우가 운영하는 충무횟집으로 두 분을 모셨다. 곽영우 동문님은 다른 편집위원이 스토리텔링하기로 되어있지만 모교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한해 선후배 사이인 두 분이 기억을 회생해 내는 데는 상호보완적인 차원에서 좀 더 정확한 스토리가 엮어지리라는 예상에서 시도되었다. 그리고 기억의 한계를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선배 동문님을 찾아보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필자하고는 13년, 12년 선배이신 두 분의 건강하신 모습을 뵙게 되니 우선 반가웠다. 두 분 동문께서는 우선 통합이전의 역사를 이번 동문회지에 넣게 되는 편집방향을 찬성하시며 동문회의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고 이어가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셨다.
곽인용 동문님은 에너테크(주) 회사의 대표로 계시는 하이브리드 절전 변압기를 주력품목으로 하여 여기에 연관되는 주변 기기를 취급하는 회사를 경기도 부천에서 운영하시면서 주로 조달청에 납품하신다고 하신다. 규모를 물으니 이런 저런 여러 알찬 뿌리를 내리신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신다. 원래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아니고 동문회의 역사에 대해 취재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더 이상 여쭈워보지는 않았다. 동문회의 여러 행사에서 임시사회를 맡아 중후하고 조용하고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으로 동문들을 대하셨는데 필자와의 대담에서도 역시 그 모습을 견지하셨다.
여든을 눈앞에 두신 분 같지 않으시다. 또박 또박 동문의 역사를 풀어내시다가 인명을 거론해야 할 때 기억이 안 나실 때는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해 후배이신 곽영우 동문님을 통하여 인명을 찾아내기도 하셨다.
곽영우 동문님은 지난 1979년에 발족한 재경 남해 향우회 테니스 동호회가 20여 년간 존속해오다가 1997년 이후 중단되어 재건에 고심하던 중 2003년 군향우회 체육대회 때 테니스를 경기종목으로 추가하여 각 읍면 1개 팀씩 복식 경기로 하여 2005년에도 동일하게 진행되었고 2차에 걸쳐 행사를 진행하면서 각 읍면 1개 팀 참가는 소수동호인의 참가에 불과하므로 보다 많은 회원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2007년 대회에는 각 읍면 팀 수를 제한하지 않고 남녀 구별 없이 청년부와 장년부로 분류하였더니 40여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마쳐 동호인의 활성화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셨다. 그 이후로 군 향우회 체육대회에 국한하는 행사를 넘어 매년 춘추로 정기적 행사로 발전하였고 남해군수 배 향우 초청테니스대회에 1회 때부터 참가하여 금년 2013년 8회 때 까지 모두 7번을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현재도 남해군향우테니스회장을 맡으시고 70대 후반의 연세이신데도 사흘 마다 아파트의 코트에 나가신다고 하셨다. 해박한 지식과 조리 정연한 말씀으로 동문회의 역사를 풀어내시는 기억력에 필자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테니스로 건강을 축적하시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신 것이 현재의 건강한 모습을 후배에게 보여주시는 원동력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인터뷰를 통한 역사 찾기
두 분의 카라카랑한 목소리와 전혀 흔들림 없이 엮어 내시는 모교의 이야기가 바로 살아있는 역사이고 증언이다. 초창기 동문회의 뿌리를 붙들고 키워나가면서 헌신하지 않고서야 동문회 구비 구비에 어린 사연을 어찌 이렇게 필자에게 명경처럼 보여주실 수 있겠는가?
곽인용 동문님에게서 입수한 회원명부에 의하면 재경남해종합고등학교 명부를 1988년에 발간하고 그 뒤 9년만인 1997년 1월에 두 번째 회원명부를 발간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1997년판 명부는 입수했으나 1988년 판은 찾고 있는 중이다. 이 88년판을 찾는다면 그 당시 임원들의 명단을 이번 동문회지에 실을 예정이다. 이미 확보한 1997년 판의 임원 명단 역시 동문회의 산역사와 함께 실을 것이다. 물론 재경남해중학교동창회의 임원 명단을 싣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재경남해중학교동창회는 재경남해농고동창회 창립 3년 후 정왕선(남중1회/제일고18회) 동문님을 초대회장으로 뽑고 2대 박희태(남중3회) 회장님, 3대 유광사(남중7회/제일고27회) 회장님, 4대 김재전(남중8회/28회) 회장님으로 이어져 오면서 결국 같은 뿌리의 학교는 2008년 6월에 재경남해중 · 제일고등학교 통합 총동문회를 발족시키는 통합의 큰 사업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 자세한 경위는 동문회의 발자취에 나와 있고 이 글의 말미에 지난 1집의 <편집후기>를 발췌하여 실었기 때문에 생략한다.
두 분의 증언에 의하면 훨씬 이전인 1968년도부터 남해중학교와 남해농고의 통합 체제의 동문회 창립을 추진하여 운영하다가 이러저러한 사정이 생기고 회장의 유고로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1986년까지 동문회는 운영되지 못하였으며 1987년에 김욱태(농고3회) 동문님의 국민은행장 취임 축하연에서 고 강창호(농중1회), 이인포(농고2회), 김재성(남중1회), 곽인용(남중2회), 곽영우(남중3회), 고 이종근(농고1회) 동문님이 참여한 6인위원회를 조직하여 재경남해중 · 농고동창회를 통합하여 창립하려고 하였는데 역시 여러 사정으로 재경남해농고동창회만 먼저 창립하였고 초대 회장으로 강창호(1987.5~1994.4) 동문님이 거액을 동문회 기금으로 내어놓으시며 재경남해농업고등학교동창회의 기반을 다지셨다. 그 뿐만 아니라 강창호 동문님은 재경 남해군향우회 8대 회장으로 1996년 6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재임하시며 재경 향우사회나 재경 동문사회에서 크나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2대 회장으로 정왕선 동문님이 1994.5~2007.4월 까지 회장직을 맡으시고 동문회의 발전에 힘쓰시다가 2004년 5.14일 타계하시는 바람에 잔여기간인 2004년 5.15일부터 2007년 5월에 3대 회장으로 유광사 동문님을 선출하여 2008년 4월까지 이어졌다.
모교의 후배들에 대한 장학사업은 재경남해농업고등학교 동문님들께서 먼저 시작하였다. 망운장학회는 동문회 장학사업과는 별도로 조직되었는데 김욱태 동문님을 위시한 유지들이 모은 기금을 바탕으로 그 이자 수익을 그 당시 농고 재학생 6명에게 분기별로 내는 수업료 24,000원을 4분기 모두 지급하기 시작하였고 기금이 오천만원을 넘어서자 재단법인으로 등록하여 현재는 남해중학교 후배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물론 재경남해중학교 동문회에서도 장학금을 지급해 오다가 두 학교의 동문회가 통합된 이후에는 재경남해중 · 제일고총동문회 이름으로 매년 중학교 220만원, 제일고 2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 제1집 동문회지 발간의 가치와 <편집후기>에 실은 모교의 기맥
다음 글은 2010년에 발간한 본 동문회 명부의 <편집후기>에서 연대 일부를 수정하여 그대로 옮긴 글이다. 두 동문회의 통합 후 만든 총동문회의 창간호 회원명부 <편집후기>야 말로 우리 모교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국에 대한 침탈이 극에 달했던 80 여 년 전의 일제 강점기 후반인 1932년, 1차 산업인 농업이 삶의 근간을 이루고 최고의 경제 기반이었던 30년대에 남해 공립 농업 실수학교로 개교한 우리의 모교는 그 동안 학제의 개편이나 교명의 변경 등을 2년제에서 1년, 또는 4년제로 되고 나중엔 또 6년제가 되었다가 다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분리되는 일이 있었으며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또는 남녀 공학에서 남, 녀 고등학교로 갈렸다가 다시 통합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남해농업고등학교의 남녀공학에서 여고를 탄생시켜 남해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32회 졸업생을 배출시킨 후에 다시 남해종합고등학교와 통합하여 남해제일고등학교를 개교한 것은 크나큰 발전적 변화였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빨리 적응하여 교육발전은 물론 지역사회와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선각자들의 해안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우리는 그러한 모교의 변화를 가져와 오늘이 있게 한 우리들의 스승님과 선배님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행정가나 독지가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80개성상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모교입니다.
일제 침탈기 후반 14년이란 암울한 시대에 그래도 해방의 꿈을 간직하고 해방된 조국의 간성이 되겠노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향학의 열정을 불태웠던, 지금은 많이 타계하신 대 선배님들의 학창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래된 우리 모교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하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큰 에너지가 되어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 기가 뻗쳐있는 것입니다.
다시 개교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일제의 수탈로 황폐화된 조국강산이 해방이 되었다고는 했지만 강대국의 간섭과 동족간의 이념 대립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38선으로 갈려졌다가 그 통한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북의 남침으로 또 한 번 한반도가 초토화 되는 6.25 동족상잔을 겪었던 그 역사의 현장에 우리의 스승님들과 선배님들께서는 꿋꿋하게 배움의 터전을 지켜왔습니다.
50년대의 폐허로 헐벗은 조국은 60년대로 넘어오면서 보릿고개라는 절체절명의 시대에 새마을 사업과 식량증산 등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집을 해결하고 바야흐로 공업입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근대화의 물결을 이룰 때도 우리들은 우리의 모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역사의 주인공이었으며 우리의 모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항상 우리를 품고 가르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기나긴 역사를 가진 우리의 학창에 어리는 아련한 동문의 끈끈한 인연을 다시 찾아보고 그 힘을 한 곳으로 뭉치고자 마침내 2008년 6월 4일에 재경남해중학교와 재경남해제일고등학교의 두 동문회를 통합하여 재경남해중 · 제일고등학교 총동문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동시에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총동문회 명부 발간은 상당히 난제중의 난제였으나 다행스럽게도 각 기별로 협조해 준 덕택으로 이렇게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여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상 통합이전 우리 동문회의 뿌리는 물론 통합 이후 제1,2기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이제 3기를 맞은 후 2년치까지의 새 역사를 싣는다. 통합 이전의 사진자료를 구하기는 힘이 들어 문자화된 내용이 주이며 통합이후의 제1,2기의 총동문회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사진자료는 대표적인 것을 최대한 많이 실어서 다양한 총동문회의 활동상을 표출하기에 힘썼으며 각 기별 활동상을 볼 수 있는 시각자료인 사진자료는 최대한 모두 실으려고 노력했으며 사진을 보내오지 않은 기수도 각종 동문회활동이나 기별활동에서 발췌하여 실을 수 있도록 전 편집위원은 열과 성을 다하였다. 지난 번 대 선배님 두 분의 인터뷰를 통해 두 분이 들려주시는 동문회 뿌리 이야기는 아직 불확실한 내용과 보충해야할 내용이 많다. 애로 사항을 전화로 말씀 드렸더니 최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억을 다듬어서 다시 편집실로 오시겠다고 하신다. 편집실이 생겨난 후에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이다. 오시면 당장 뽑아 놓은 선배 동문님들의 성함과 기수확인부터 부탁드려야 할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자료를 출력하여 동문회 뿌리를 알리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검증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