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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기 - 동문문원

내용
정흥기 - DMZ 평화공원은 통일의 지름길이다.
출처
망메새

상세내용

"DMZ 평화공원"은

                      통일의 지름길이다.

 

 

 

▶ 평화공원, 국가정책으로 결정되기까지

 

2013.5.9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 중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반도의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 하겠다"고 천명함으로써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DMZ는 국내뿐 아니라 일략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관심지역이 되었다.

이어서 6월 27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문제를 논의하며 DMZ평화공원 조성사업에 중국 측 동의를 얻어내자 8월 2일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통일선전부장은 "개성공단이 잘돼야 DMZ평화공원도 잘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첫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개성공단 문제가 한국정부의 "재발방지책"이란 높은 벽에 부딪쳐 7차에 걸친 협상 끝에 2013.8.14일 재가동에 합의함에 따라 그 다음날인 8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에 이산가족상봉과 DMZ세계평화공원 조성문제를 북한에 정식제의 하였는데 이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큰 정책 변화였다. 연이어 8월 23일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박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나서 DMZ평화공원 조성에 유엔이 협조 할 것과 적당한 시기에 북한을 방문하여 논의 예정이라고 발표하는 등 한국에서는 전담위원회가 구성되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엔까지 가세함으로써 이 문제는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 DMZ조사, 20년 전에 마치고 "민족공원"조성 건의

 

한반도 허리를 관통하고 있는 비무장지대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국가정책으로 나타나기까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뜻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지역에 대해 연구되고 조사, 건의된 내용이 쌓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생태계 조사는 해방 후 가장 전문적인 학자들로 6년간의 종합적 조사를 마치고 당시 정부에 "민족공원으로 조성 할 것"을 1993년에 이미 건의하였다.

1990~1996년 사이 필자는 한국의 저명 생태계 교수들로 구성된 100여명의 학자들과 같이 155마일에 달하는 위험한 지뢰밭을 누비며 어렵게 현장 조사하던 일이 떠올라 깊은 감회에 젖는다. "민족공원"이 "평화공원"으로 이름만 바뀌어 민족 통일정책으로 전면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유엔사무총장이 남북을 비밀리에 오가고 "남북정상회담"까지 바라보며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어렵게 진행되리라 믿는다.

 

 

▶ "한국녹생운동의 기초"를 닦은 사람들

 

젊음을 불태워 삼성그룹에 근무했던 관계로 1986년부터 호주와 독일에 체류하면서 "인류문명의 큰 변화"를 감지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산업화로 급속히 성장해온 인류사회가 공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병폐를 막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것이 바로 "GREEN의 가치관" 즉 "녹색운동"이었다. 1975년까지 일본유학시절 필자는 일본의 공해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체험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이제부터 한국도 공해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 뻔하므로 녹색운동은 한국이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부합된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공해자료와, 독일 호주 등 녹색운동 성공사례 자료를 수집하여 1989년 귀국과 동시에 "한국 녹색운동본부"(대표:정흥기)를 결정하고 전국 시, 도 조직을 구축 하여 나갔다. 그리고 여러 문인단체 접촉결과 신선한 호응을 얻어 1차 연도 열성회원 120여명으로 "녹색문인회"를 발기 조직하여 저변을 확대해 나갔다. 구상 시인과 숙대 김남조 교수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같은 뜻으로 창간된 녹색신문(발행인, 김시약)까지 3개 단체가 녹색운동의 중심이었다. 당시 이석연 변호사는 경실연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그룹, 최열씨를 중심한 환경운동그룹 등 3가지 흐름이 있었고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정계로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녹색운동가들은 내실을 중시하고 앞에 나서기를 사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명사랑, 자연보호, 의식개혁에는 요란한 운동보다 "조용한 겸손"을  첫째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DMZ 기획단은 1991년 초 부터 DMZ조사를 우선적으로 추진, 계획을 세우고 정부와 관계기관에 세부계획과 공문을 보내 정부 승인, 허가, 승낙, 인가 등 행정수속과 현지답사를 밟아 나갔다. 군사특수지역에 장기간 대규모인원이 DMZ를 조사하겠다고 하니 정부당국도 이렇게 큰 규모는 처음이라며 신청자 100여명 전원과 친척까지 광범위한 신원조회가 이루어졌다.

 

 

▶ 조사위원회 발족과 북한 공동조사 제의 기자회견

 

사진앞줄 우로부터 원병오, 강영희, 최기철, 류달영, 김훈수, 이영로, 박봉규박사

뒷줄: 김시약, 이종규, 장동수, 김재황, 신유항, 정흥기, 한상기, 임양제, 윤명희박사 등 조사 단 책임자들의 기자회견.

2년 전부터 기획단에서 현장사전답사, 행정수속, 세부계획을 추진해왔고 북한에는 6개 월 전에 공식문서를 보냈으며 이날 행사는 국내신문, TV는 물론 세계뉴스로 전송되었다. <1992.1.25일 서울 프레스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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