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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김난정 - 향우 글과 고향에서 온 글

내용
김난정(이동면) - 눈속에 핀 매화
출처
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눈속에 핀 매화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봄꽃이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이른 봄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꽃 은은한 향기와 고고한 자태 앞에 서면 흐트러진 옷섶도 다소곳이 여미게 된다. 땅의 매화가 하늘에 비치고 하늘의 매화가 강물에 떴다. 산과 들, 하늘과 땅 섬진강을 끼고 하얀 꽃등불이 켜졌다.

우수 경칩이 한참을 지났는데도 수시로 드나드는 동장군과 가끔씩 황사까지 몰려와 화창한 날씨에 만개한 매화를 지천으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못했다. 봄 날 고향 길 오가며 늘 마음만 다녀왔던 곳을 이제서야 그 앞에 서니 고고한 자태와 지순한 향기가 더 징하게 다가온다.

해마다 3월이면 전국에서 제일 먼저 봄꽃 축제가 열리는 곳, 우리나라 최대의 매화꽃 군락지인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 아니 매화마을로 더 잘 알려진 곳. 제 14회 광양매화축제 마지막 날답게 차도 사람도 모두 춘향이 걸음으로 축제의 마지막 절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광부로 일했던 청매실농원의 주인인 김오천 옹이 일본에서 매화나무를 들여와 이곳에다 처음 심었고, 그 후 며느리인 홍쌍리 여사가 계속 품종을 개량하면서 가꿔온 것이 매화마을의 시초이다.

매화는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진 꽃이며, 보통 꽃잎의 빛깔에 따라 복숭아꽃보다 붉은 빛이도는 홍매화, 하얀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 눈부시게 하얀 백매화로 구분 하고 있다. 종자별로는 꽃이 일찍 피는 올매화에서 꽃이 늦게 피는 넘매화가 있고, 그 종류만도 3백50여종이나 되며 열매인 매실은 설사, 해열, 기침, 가래, 복통, 구토 등에 효과가 있으며, 특히 매실주는 배가 아플 때나 식욕이 없는 여름철에 먹으면 식욕을 돋구기도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오직 뜨거운 마음 하나로 피워 낸 작고 청초한 꽃망울들이 바람결에 수줍게 떨고 있다. 노란 꽃술과 하얀 꽃잎, 선홍색 꽃받침, 온몸을 휘감아 도는 그윽한 암향(暗香)까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조화가 있을까. 유심히 바라보니 어린 나무보다 고목이 된 매화나무에 더 많은 꽃들이 달려있다. 죽기 전에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생존의 본능일까.

사람은 늙으면 천대를 받으나 매화나무는 늙을수록 그 가치를 발휘한다. 수십 년 된 나무의 둥치에서 잔가지가 나와 그 가지 끝에 꽃이 피면 더욱 운치가 돋보인다 해서 이것을 고매(古梅)라 부른다. 이름난 고매로는 승주 선암사 칠전선원 앞에 620년 된 백매와 400년 된 선암매가 있고, 하도 붉게 필어 흑매라고도 불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그리고 장성 백양사 고불매가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가지 끝에 향기를 품어 운치있게 꽃을 피우는 이들 매화는 유독 향기가 짙어 한 그루만으로도 온 절집이 매화 향으로 가듣 찬다고 한다.

예로부터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그 절개를 높이 사고, 추운 겨울의 시련 속에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결함과 강인함으로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으며 끊임없이 문사들과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눈 쌓인 골짜기에 핀 매화는 숨어있는 은자와 같다."고 노래한 퇴계선생도 매화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여 매화를 노래한 시가 백 여수가 넘는다고 한다. 그가 매화를 끔찍이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담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으며, 그때 두향의 나이는 매화 꽃봉오리 같은 18세였다. 그녀는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지라 한동안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 같았던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랑도 매화꽃 피었다 지는 것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뿐이다." 이날 밤의 이별은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퇴계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그 매화 화분을 평생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사랑했다.

 

산창에 기대 앉아 밤빛은 차가운데

매화 가지에 달이 올라 밝고도 둥글어라.

가느단 바람 다시 불어오지 않아도

저절로 맑은 향내 뜨락 가득 퍼지네.

 

뜨락을 거닐자 달이 나를 따라오네.

매화꽃 둘레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향내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해라

퇴계 이황 <달밤에 매화를 읊어>

 

어느덧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나흘 동안 걸어서 안동을 찾아갔다. 그들의 사랑은 한 사람이 죽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 도산서원 입구에서 매년 봄이면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전신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前身應是明月 機生修到梅花).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라고 지극한 매화 사랑을 보여준 퇴계선생도 지금쯤은 도를 이루어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에 꿈을 피우는 한 그루 은은한 고불매가 되었을까.

매화축제를 가장 멋있게 감상한다는 대나무밭 뒤쪽의 언덕바지 전망대에 올라서지도 못했는데 일행이 기다린다며 남편은 벌써 내려가기를 재촉한다. 섬진강 바람에 하얀 꽃등불이 은하수처럼 흩날리고 난 뒤에야 수많은 세월을 하루처럼 살아온 이름난 고매를 감상할 수 있다니 아쉬운 마음을 그것으로 달래며 내려오는 길,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그윽한 암향이 일상에 찌든 탁한 내 영혼을 씻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