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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조영일 - 향우 글과 고향에서 온 글

내용
조영일(미조면) - 어느 병사의 어리석은 죽음
출처
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어느 병사의 어리석은 죽음

 

 

 

미국 달라스에, 중동전쟁에 파병을 간 아들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랑스럽게 사랑으로 키웠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 놓고 매일 교회에 나가 무사하게 돌아오기 만을 열심히 기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 제리예요."

"오! 제리 너 지금 거기 어디냐?"

"예 어머니, 여기 병원 이예요."

"왜 병원에 있느냐? 어느 병원이냐?"

"예 어머니, 함께 복무하던 친구가 심하게 다쳤어요."

"그래, 너는 무사하지? 빨리 보고 싶구나!"

"친구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 친구가 한쪽 눈과 한쪽 팔이 없어진 중병 이예요."

"오! 그래 큰 일 이구나. 저는 친구 옆에 오래 동안, 아니 평생 동안 영원히 같이 있어야만 돼요...."

"얘 제리야! 어떤 친구 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불구자 하고 왜 평생 동안 같이 지내야만되니?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엄마가 얼마나 너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 친구는 의사에게 맡기고 너는 빨리 돌아 오너라. 알겠니?!"

"예 어머니 알았어요...."

 

이런 대화 중에 전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아들이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전화도 오질 않고 전혀 소식도 없었다.

기다림 끝에 너무나 안타까워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알 길이 없어,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 다음날 아침 10시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황급히 전화를 받아, "여보세요? 제리니?!" 하고 불러 보았으나 다른 사람의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아들 제리가 호텔에서 투신자살을 하였으니 시신을 찾아 가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픈 소식 이었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이 아무 영문도 모른 체 시체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앞이 캄캄해졌고 하늘이 무너지는 비통한 심정에, 전 날 목소리만을 남긴채 죽어간 아들이 원망 스럽기만 하였다.

결국 한쪽 눈과 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친구가 아닌 자신의 아들 제리였던 것이다.

 

"심하게 다친 사람이 친구가 아닌 어머니의 아들 이었다면 어머니는 어찌 하셨을 것입니까?"

 

왜 이런 한마디를 할 수 없었던가? 제리는 그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사랑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보려던 못난 자식이었던 것이다. 제리는 하늘 같이 높고 바다 같이 깊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한 못난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높고 깊은 사랑, 보고 싶어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을 조금이라도 생각 하였다면, 투신자살 이라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어머니를 그렇게 슬프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눈을 잃어버리고도 "실락원"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존 밀턴"은, 한 때 실의에 빠져 신을 원망하기도 하였고 암흑 속에서 글을 써야만 하는 고행을 투정하기도하고, 신의 사랑에 대해 회의를 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의 인내심으로 믿음을 회복, 신의 참 사랑을 어둠속에서 찾았다.

 

빛의 천사라 불리우는 "헬렌켈러" 역시 보지도 듣지도,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의 불구 상황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으며, 만져 지지도 않는 사랑 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을 암흑속에서 인식 할 수 있었을까?

본인 스스로의 끊임없는 인내와 끈기의 투쟁속에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과 선생님의 지극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며, 더불어 헬렌켈러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와 보살펴주는 선생님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고, 어느 누구를 원망해 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잃어버린 시력을 완전히 찾게 해달라는 기적 같은 소원이 아닌, 단 5분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박한 소원이었다. 그 짧은 순간 눈을 뜨게 된다면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리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헬렌켈레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아주 짧은 순간 만이라도 눈을 뜨게 된다면, 지금까지 저를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키워준 어머니의 얼굴과 사랑을 알게끔 가르쳐준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소원일까? 이 세상에서 잊을 수 없고 가장 존경스러운 어머니와 선생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살아 가면서도 끝내는 성공 이라는 이름으로 은혜에 보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눈물겹게 받아 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