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재경남해군향우회
第三章 孤愁의 落島流謫地로서의 옛고장 (제3장 고수의 낙도유적지로서의 옛고장) - 悲運(비운)의 流配客(유배객)들 2
상세내용
尹蓍東(윤시동)…… 자는 백상(伯常)이요 호는 방한(方閒),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영조 20년인 1754년에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 정언 지평 등 벼슬을 역임 중 동 32년 당론을 운위하였다는 죄로 7년간 고향에 안치(安置)되었다가 동 38년에 풀려나와 제주목사(濟州牧師)로 등용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좌승지에서 대사간의 벼슬까지 올랐으나 신광집(申光緝)의 무죄를 주장한 죄로 다시 추방되었다가 갑산으로 이배(移配) 동 48년에 사면되었다. 그러나 영조 52년 경기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또 당론을 거론하였다는 죄로 남해에 유배되었다.
1년 남짓 남해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그는 개성유수(開城留守)로 발탁되어 10여 년간 활약하였으나 정조 12년 세 번째로 또 당론을 운위하였다는 죄로 삼화(三和)로 유배되는 등 3, 4차례나 추방 유배를 당하면서도 재삼 재기용되는 억세게 파란많고 관운이 끈질긴 사람이었다.
정조 19년에 이조판서 우의정 등 벼슬을 지내다가 1797년 정조 21년에 사거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