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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第四章 悲嘆의 謫所에 핀 流配文學 (제4장 비탄의 적소에 핀 유배문학) - 고수(孤愁)의 시름 문학(文學)에 불태우며

내용
고수(孤愁)의 시름 문학(文學)에 불태우며
출처
사향록 (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고수(孤愁)의 시름 문학(文學)에 불태우며

 

 
 
 
蒼茫三島海雲邊(창망삼도해운변)   方丈蓬瀛近接聯(방장봉영근접련)
叔姪弟兄分占邊(숙질형제분점변)  可能人望以神仙(가능인망이신선)
 
 
 
아득한 섬들은 구름이 내려앉은 바닷가에 있고
 
방장 봉래등 심심산 못지않은 절승의 영봉도 가까워
 
형제 숙질들이 각기 흐터져 홀로 외롭게 귀양을 살건만은
 
남들은 내가 무슨 신선놀음이나 하는듯이 보겠네.
 
 
숙종 15년 금의옥대(錦衣玉帶)를 벗기우고 우리 고장 이동면 용소리 앞바다의 무인도인 노도(櫓島)에 이리 안치되어 귀양살이를 하던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이 적소에서 읊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망망한 바다. 칠흑(漆黑)처럼 무거운 비탄과 실의와 고독에 젖어 읊은 이 시는 결코 김만중 한 사람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리라.
 
모든 적객들의 특히 정적의 모함으로 천리 먼길 외로운 낙도에 정배되었던 모든 유배객들의 피 눈물을 토하는 원한의 시이며 단장(斷腸)의 망향시이기도 하였으리라.
 
저주(咀呪)로운 아픔의 숙명을 안은채 내일을 약속받지 못한 배소에서도 그들은 시가를 잃지 않았고 문학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어떤 이는 주옥같은 시가(詩歌)를 남겼고 어떤 이는 소설을 남겼다.
 
그리고 어떤 이는 유려한 기행문체(紀行文體)의 르포르터쥬를 남겼다. 처절한 비탄과 실의의 배소에 핀 그들의 유배문학. 배소인 남해는 그들 유배문학 창조(創造)를 위한 산실(産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들에게 남겨진 작품은 그 수가 너무나 적다. 필시 배소의 구석 구석마다에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시가들이 많이 피었겠거늘 끝내 찾아내지 못함이 유감스럽다.
 
그러나 요행스럽게도 우리 고전문학사상 자랑스러운 몇편의 배소문학을 이어 받고있다.
 
첫째는 남해찬가라 할수있는 자암 김구선생의 경기체가(京畿體歌) 「화전별곡」(花田別曲)이며 둘째는 신소설의 가능성을 제시하여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 셋째는 우리고장의 풍물과 승경(勝景)을 기행문체로 쓴 유의 양의 「남해문견록」등이 그것이다.
 
비록 편수는 적으나 그 작품 하나 하나가 우리 고전문학사상에 차지하고 있는 획기적인 위치에서 더욱 긍지를 느낄수 있다.
 
특히 감명을 주는것은 작자 자신들이 내일을 기약받지 못하는 사지(死地)에 있으면서도 그 작품세계에는 한결같이 그러한 슬픔이나 숙명성을 투영(投影)하지않고 오직 문학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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