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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남해군향우회

第四章 悲嘆의 謫所에 핀 流配文學 (제4장 비탄의 적소에 핀 유배문학) - 자암(自庵)의 화전별곡(花田別曲)

내용
자암(自庵)의 화전별곡(花田別曲)
출처
사향록 (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자암(自庵)의 화전별곡(花田別曲)

 

 

 

자암의 「화전별곡」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시가의 유래 즉 시가사(詩歌史)의 입장에서 잠깐 이야기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는 것이 이해를 도울 수 있겠기 때문이다.
 
흔히 한림별곡(翰林別曲), 관동별곡(關東別曲) 등 이런 시가를 경기체가(景幾體歌)라 부른다.
 
시가의 미구(尾句)에 경기하여(景幾何如) — 즉 경기 엇더하니잇고 — 라는 문귀가 반드시 붙은 때문이다.
 
화전별곡도 그점에 있어서 경기체가(景幾體歌)의 유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경기체가(景幾體歌)의 시작은 한림별곡(翰林別曲)부터이다.
 
고려때라면 몽고(蒙古)가 몇차례나 쳐들어오고 서울을 강화(江華)로 옮겨가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참으로 다난(多難)했던 시절이다.
 
무인(武人)들이 전횡(專橫)하던 때이고 문인(文人)들은 세상을 피해서 시주(詩酒)를 벗삼고 풍류에 도취하여 살아가던 때다.
 
그런 시절에 문인들의 소일파한(消日破閑)으로 혹은 울분한 감정의 반발적인 발로(發露)로 이런 형태의 시가가 나온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화전별곡을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한림별곡을 비롯한 이런 종류의 경기체가에는 한문이 많이 구사되고 있다.
 
한학에 뛰어난 문인이 아니고는 아니되리라 싶을 정도로 그 한문은 박식하고 주위의 한학적 생활에 익은 것이다.
 
이두(吏讀)가 섞여 나오고 음률이 맞는다.  참고로 고려사에 그 전문이 나오는 한림별곡의 몇 줄을 여기에 소개해 본다.
 
전후 八장 (章)으로 된 그 제1장은
 
「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 冲基對策 光鈞經義 良鏡詩賦 偉試場景何如. 琴學士 玉筆門生 云云」
 
이것을 악장가사(樂章歌詞)에 따라 위(偉) 시장(試場) 이하를 풀어 쓰면 「위 시장 人  경(景) 괴 엇더하니잇고.
 
금학사의 옥필문생 위 날조차 몇부니잇고……」가 된다.
 
원순문은 유원순(兪元淳)의 글을 말한 것이고 인로시는 이인로(李仁老)의 시를 말한 것이며 공로四六은 이공로(李公老)의 四六병려체(鉼儷體)를 말한 것이고 이 정언은 이규보(李奎報)를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보아나가면 제1장은 모두가 이름을 나열해 나간데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시장의 광경을 연상케 해놓았다.
 
다음 제4장을 보면
 
黃金酒 栢子酒 松酒 醴酒 竹葉酒 梨花酒 五加皮酒 鵬鵠蓋 琥珀杯에 가득부어 偉 勸上人景 긔 엇더하니잇고.
 
劉伶陶潛 兩仙翁의 劉伶陶潛 兩仙翁의 偉 醉흔 景 귀엇더하니잇고.
 
이 제4장은 명주(名酒)와 술잔 이름을 나열하고 취기(醉氣) 어린 술좌석을 묘사하였다.
 
제六장에서는 거문고 피리등 악기와 흥겨운 파야(過夜)의 광경을 연상케 해놓았다.
 
이렇게해서 한림별곡은 8장전체가 시부(詩賦) 서적(書籍) 명필(名筆) 명주(名酒) 화변(花弁) 음악 누각(樓閣) 추천(秋遷)의 순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가락 맞추어 3 3 4  4 4 4의 음률수(音律數)로 나가고 있다.
 
이 한림별곡을 그대로 본받은 것이 곧 근재 안축(謹齋 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竹溪)별곡이다. 관동별곡은 안 축이 고려 충숙왕조 강원도 순무사(巡撫使)로 있을때 관동지방의 경승(景勝)을 읊은 것으로 그 첫 장을 소개하면
 
海千里 山萬疊 關東別境 碧油幢 紅蓮幕 兵馬營主 玉帶傾蓋 黑朔紅旗 鳴沙路 위(爲) 巡察八景 긔 엇더하니잇고(原文幾 何如)
 
또 죽계별곡의 경우
 
竹嶺南 永嘉世 小白山前 千載興亡 一權風流 順政城裏
 
년디업는 翠華峯 天子藏胎
 
위 繼作中興 人 긔 엇더하니잇고.
 
이 외에도 상대별곡(霜臺別曲) 화산별곡(華山) 도동곡(道東曲) 독악八곡(獨樂八曲) 오륜가(五倫歌) 연형제곡(宴兄弟曲) 등도 모두 이와 비슷한 시가(詩歌)들이다.
 
이처럼 한림별곡의 유형(類形)이 고려조부터 이조에 걸쳐 성황을 이루었고 또한 오랜 동안 계승(繼承)되어 온것은 한림별곡이 고려조 귀족들의 새 형식의 가요로서 공사간의 연회석(宴會席)에서 성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이조에 들어와서 이 시가(詩歌)들이 혹은 궁중가악(宮中歌樂)으로 쓰이게 되고 예문관(藝文館)에서도 노래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한림별곡체의 모작(模作)이 한 때 성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림별곡의 형식을 그대로 모작하거나 따르기를 피하고 새로운 형식이 모색 추구(追求)되었다.
 
변계량(卞季良)의 화산(華山)별곡 권근(權近)의 상대별곡(霜臺) 여기에 김구(金絿)의 화전별곡 등이 그 취향을 새롭게 시도했던 시가들이다.
 
원래 변곡체(別曲體)는 고려문신(文臣)들의 향락적 퇴폐적풍조(享樂的 頹廢的 風潮)와 기악(妓樂)의 성행(盛行)에서 발견된 것이었으나 이조중엽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퇴폐기풍이 비위에 맞지 않는 이조유신(李朝儒臣)들에 의해서 그 기세는 점차로 꺾여 이윽고 김구의 화전별곡과 주세붕(周世鵬)의 도동곡(道東曲)을 최후로 경기체가의 유형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고장의 경승을 노래한 김구의 화전별곡은 우리나라 경기체가(景幾體歌)의 최말기적 작품(最末期的 作品)인 셈이다.
 
(一) 天之 涯地之頭 一 點仙島 左望雲 右錦山 邑川 봇내 髙州고내 山川奇秀 鍾生豪俊 人物繁盛偉 天南勝景 긔엇더하니잇고. 風流酒色 一 時人傑 (再唱) 위 날조차 몇분니잇고.
 
이것은 전6장으로 되어 있는 화전별곡의 제1장이다. 이미 한림별곡에서 본 것처럼
 
이것은 화전(花田) 사위(四圍)의 풍물을 들어 아름다운 경치를 연상케 한 장면이다.
 
천지애 지지두 일점선도는 멀리 남쪽바다에 떨어져있는 화전을 말한것. 화전은 남해현의 별칭이다. 동국여지승람남해현(東國輿地勝覽 南海縣)을 보면 이름이 전야산(轉也山) 해양(海陽) 전산(轉山) 화전(花田) 윤산(輪山) 등으로 나온다.
 
한양에서 귀양이 왔던 자암의 눈에는 천사십리나 떨어진 남해는 곧 하늘의 끝인 「천지애」요 땅의 머리격이라 「지지두」 「한 점의 선도」(仙島)와도 같다는 뜻으로 읊은 것이다. 「산천기수」 「종생호준」의 종(鍾)은 모인다는 뜻.
 
위 천남승지의 「위」는 위에서 본것처럼 경기체가의 특징으로 「偉」 혹은 「爲」로 나온다. 이것은 일종의 감탄사.
 
경(景) 긔엇더하니잇고……는 그 광경이 어떠하냐는 뜻이나 그러나 그 뜻보다는 전후를 연결하는 말로 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체가로서 이것은 반드시 있는 특징이다. 이 제1장은 절경(絶景) 속에 감싸여진 화전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사람살기 좋은 곳이냐하는 감탄의 뜻이다.
 
(二) 河別侍一 正芝帶齒爵兼 朴敎授 손저어 醉中에로 姜綸雜談 方勳鼾睡 鄭機飮食 偉 品官齊會景 긔엇더하니잇고. 河世謂氏 발버훈 風月 偉 唱和景 귀엇더하니잇고.
 
제2장에서는 친한 교우(交友)들의 취벽(醉癖)를 묘사하고 있다. 즉 강륜은 잡담을 늘어놓고 방훈은 코 골며 자고 정기는 먹기 바쁘다는등 재미있는 품관들의 모임을 그려내고 있다.
 
하별시나 박교수나 강륜이나 정기 등은 모두 자암과 교우가 두터운 실존 인물들이다.
 
(三) 徐玉非 高玉非 黑白頓殊 大銀德 小銀德 老小不問錄 令歌舞 緣長鼓 소졸玉只 偉
 
花林勝景 귀엇더하니잇고. 花田別號 名實相符 偉 鐵石肝腸이라도 아니 굿기리업더라.
 
이 제3장에서는 화림 즉 화전에서의 연악(宴樂)을 말했다. 음률을 맞추기 위해서 의미없이 쓰여진 글자들을 볼수가 있다.
 
(四) 漢元令 以文歌 鄭韶草 笛或打 鉢或攔盤 間擊盞蓋 搖頭頓身 備諸醉態 偉撥興景 긔엇더하니잇고. 姜允元氏 스르렁 소리 偉 돗긔야 쥬무드모리라.
 
이 4장은 연악중(宴樂中)의 음악을 읊은 것. 정소의 소(韶)는 노순(盧舜)이 만든 음악을 말한다. 정성(鄭聲) 즉 정나라 음악은 약간 음란하다고 했다.
 
이런 노래 그런 피리곡조를 불어가며 혹은 사발을 두드리고 혹은 소반을 때리고 그러면서 잔을 치고 몸짓을 하며 취태(醉態)를 부려보는 것도 때로는 흥겨운 광경이 아니겠는가.
 
어쩐지 자암의 호탕한 인품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화전별곡에서 씨(氏)가 붙은 이름으로 하세연(河世涓) 강윤원(姜允元) 정희철(鄭希哲) 세 분이 나오는데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五) 綠波酒 小麯酒 麦酒 濁酒 黃金鷄 白文魚 柚子榧  貼匙案에 偉 가득부어 勸賜景 긔엇더하니잇고. 鄭希哲氏 過麦 田大醉 偉 어니제 슬플저기 이실고.
 
여기에서는 여러가지 명주와 안주들을 들어냈다.
 
이미 우리는 한림별곡 제4장을 알고 있다. 그 한림별곡에 나오는 술이름 그리고 그 문귀와 비교해 보면 흥미 있다. 여기서는 술대신 안주 이름을 더 늘어놓았을 뿐이다. 정희철씨는 보리밭을 지나가기만 해도 대취한다고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六) 「京洛繁華야 너는불오냐 朱門酒肉이야 너는 됴하냐 石田茅屋 時和歲豊 鄕村會樂이야 나는 됴하노라」
 
이 6장은 경기체의 형식이 아니다. 화전별곡이 나올때는 경기체가는 벌써 한물이 가고 흥미를 잃어 자암은 새로운 가풍으로 읊은것 같다.
 
이 6장은 자기 자신의 행복감을 나타낸 것이라 할까. 화전별곡 전체의 주제(主題)이기도 하다. 경락번화는 서울의 번화를 말하는 것이고 주문주육은 부잣집의 술과 고기 즉 오대 광실 높은 집에서 보다도 석전모옥 비록 돌밭 초가집이나마 때는 풍년이요 정든 벗과의 향촌의 모임이 더 행복스런 애착과 자족감을 갖게 한다고 끝맺고 있다.
 
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남해의 승경에 심취하고 흠뻑 젖어버려 행복한 심경을 이 화전별곡으로 읊었던 것이다.
 
(註解 國文學者 禹玄民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