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문화와 역사

Home
문화와 역사
남해 향우사

재경남해군향우회

第四章 悲嘆의 謫所에 핀 流配文學 (제4장 비탄의 적소에 핀 유배문학) - 김만중(金萬重)의 배소작품(配所作品)

내용
김만중(金萬重)의 배소작품(配所作品)
출처
사향록 (재경남해군향우회)

상세내용

김만중(金萬重)의 배소작품(配所作品)

 

 

 

때는 숙종 15년 서기 1689년 장희빈(張禧嬪) 소생의 아들을 세자(世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서인(西人)들이 남인(南人)들에 의해 붕괴된 이른바 기사사화(己巳士禍)로 남해 노도(櫓島)에 이리 안치되었던 서포 김만중이 집에 홀로 남아 쓸쓸하게 지내는 노모(老母)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며칠 밤을 지새워 쓴 소설이 「구운몽」(九雲夢)이다.

이 작품의 주제(主題)는 인간 세상의 모든 향락(享樂)은 본래 연분이 있는 것이기는 하나 결국은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고 하는 다분히 유·불·선(儒佛仙)의 가르침을 담은 몽사류(夢寫類-幻想的)의 작품이라 하겠다.

더우기 자모(慈母)의 고적함과 슬픔을 잃게 하기 위해 순 한글로 썼다고 하니 죽음의 배소(配所)에서도 모친을 경모하고 효도하려는 그 지성(至誠)에 숙연함을 느낀다.

 


 
 
「구운몽」(九雲夢) 줄거리…… 때는 명나라 시대. 곳은 형산(衡山). 주인공인 성진(性眞)은 원래 육관대사(六觀大師)를 모시는 제자였는데 대사의 눈을 피해서 곧잘 8선녀(仙女)인 진채봉, 계담월, 적경홍, 정소저, 고춘운, 난양공주, 심연, 백준파들과 어울려 희롱하곤 하였다.
 
수도(修道)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성진에게 스스로 불문(佛門)에의 길을 찾아 되돌아서게 하기 위해 대사는 그를 파문(破門)하여 인간으로 환생(還生)시켜서 속세(俗世)로 내쫓는다. 8선녀들도 모두 인간으로 환속시켜 속세로 내려 보냈다.
 
속인으로 환생된 성진은 양소유(楊少游)라는 성명을 갖게 되었다. 소유는 어릴적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소년 시절에 과거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출세의 문이 크게 열렸다. 그는 행운의 길을 치달았다. 그는 인간으로 환생된 8선녀중에서 두 선녀를 제1, 제2 부인으로 삼고 나머지 여섯 선녀는 모두 소실(小室)로 삼아 모든 권세와 영화를 한 몸에 누렸다.
 
그는 하북(河北)의 삼진(三鎭)과 토번(吐蕃)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승(政丞)에 오르고 위국공(魏國公)으로 책봉되어 선자의 부마(駙馬)까지 되었다. 그는 슬하에 6남 2녀까지 얻었으며 벼슬은 제일 높은 태사(太師)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세월은 빨랐다. 어느새 젊음을 자랑하던 그의 인생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조용하게 은퇴생활을 시작하였다. 세상 아무것도 두려울게 없는 권세도 휘둘러 보았고 부귀영화도 한몸에 누려왔었건만 짙어가는 황혼기의 공허감을 메우기에는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덧없는 인생! 인생의 무상함을 처음으로 느끼고 탄식하는 소유는 오로지 불문에 귀의(歸依)하여 여생을 부처님과 더불어 바치고자 결심한다.
 
이때 한 노승(老僧)이 나타나서 그를 불문으로 인도해 주기로 한다. 노승은 갑자기 손에 들었던 지팡이로 다리 난간을 탁 쳤다. 순간 사방의 천지가 태고의 혼미속에 휘말려들고 소유가 가졌던 모든 것—권세 부귀영화 8선녀 화사로운 저택 찬란한 보석 그 모든 것이 그에게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직 그의 손에 쥐어진 염주(念珠)뿐이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아니 일순의 헛된 꿈 그는 인생을 그렇게 돌이켜 부른다.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인가를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미 속인 양소유가 아닌 태사의 제자 성진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8선녀 또한 천계(天界)로 되돌아 왔다. 성진과 선녀들은 더욱 수도한 끝에 마침내 극락으로 갔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 허균의 「홍길동」 등이 다분히 전기적 수법으로 구성되었음에 비해 이 작품은 드라마틱한 요소가 풍부할뿐만 아니라 그 구성방법이 환상적인 반전형식(反轉形式)으로 된 점등이 이미 이른바 근대소설의 가능성을 제시해준 선구적(先驅的) 소설이라는 정평을 받고 있다.
 
 

 
 
정경부인 해평윤씨 행장(貞敬夫人 海平尹氏 行狀) …… 효성이 지극했던 서포 김만중이 배소인 남해 노도에서 모친이 서거하였다는 비보(悲報)를 듣고 깊은 슬픔속에서 자당의 유덕(遺德)을 추앙흠모(追仰欣慕) 하며 어머니의 언행을 기술(記述) 한 추념문(追念文)이다.
 
이 추념문은 인조때의 명신 윤지(名臣 尹墀)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의 어머니 유씨가 선조의 딸인 할머니 정희옹주(貞惠翁主)의 엄한 교훈과 바른 예절을 배우며 총명하고 숙혜(夙慧)하게 자란 소녀시절부터 시작하여 14세에 김익겸(金益兼-萬重의 父)에게 시집왔다가 정축년(丁丑年)의 호란(胡亂)으로 남편이 강화도에서 절사(節死)하자 청상과부가 되어 당시 5세인 만기(萬基—萬重의 兄)를 데리고 빠져나와(당시 만중은 유복자로 태중에 있었음) 나약한 몸으로 가난의 역경을 딛고서 두 아들을 대성(大成)시키기까지의 눈물겨운 모천상(母踐像)과 그 언행(言行)을 그려내고 있다.
 
유복자로 태어나 편모 슬하에서 자라 예조, 공조판서(禮曹, 工曹判書)를 거쳐 홍문관 대제학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서포. 다만 부친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것을 평생토록 애통해하며 오직 어머니를 극진히 받들어오던 출천(出天)의 효자인 그가 유배의 몸으로 어머니의 임종마저 보지 못했음을 슬퍼하면서 유배지 남해에서 피 눈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윤씨행장기이다.
 
이 행장기에는 「경오(庚午) 서기 1690년 流配된 이듬해임) 8월 일에 불초고애남(不肖孤哀男) 만중은 읍혈(泣血)하고 삼가 짓나이다」라고 맺고 있다.
 
 

 
 
김만중(金萬重)의 배소시(配所詩) …… 서포 김만중은 남해 노도(櫓島)에서 솟구쳐 오르는 효심(孝心)과 실의(失意)와 병고(病苦) 속에 시달리면서도 주옥같은 몇 편의 칠언절구(七言絶句)를 남겼다.
 
南海謫舍有古木竹林感千心作詩 (남해적사유고목죽림감천심작시)
 
(其一)
 
龍門山上同根樹 (룡문산상동근수)
枝柯催頹半死生 (지가최퇴반사생)
 
生者風霜不相貸 (생자풍상불상대) 死猶斧斤日丁丁 (사유부근일정정)
憶我第兄無故日 (억아제형무고일) 綵服壇茂慈顔悅 (채복단무자안열)
母年八十無人將 (모년팔십무인장) 幽明飮恨何時歇 (유명음한하시헐)
 
용문산의 저 나무가지들은 뿌리를 같이 하면서
어느 가지는 이미 말라 시들어 버렸네
살아 남은 가지도 모진 풍상은 면치 못하리니
시든 가지는 가차없이 도끼로 찍기어 나가누나.
아 제형들이 무고히 단란하게 지나던 날
오색 비단옷입고 즐거이 놀던 그때 그얼굴이 그립구나.
외롭고 쓸쓸히 홀로 계시는 80 노모님
그 사무친 한을 언제나 풀어드리랴.
 
 

 
 
(其二)
 
北風肅肅吹竹林 (북풍숙숙취죽림) 今朝憶我爾何惑 (금조억아이하혹)
自我南遷汝心苦 (자아남천여심고) 何知汝亦海天南 (하지여역해천남)
風濤滔天不可越 (풍도도천불가월) 六月曾無一書札 (유월증무일서찰)
我今病痺日昏深 (아금병비일혼심) 死去誰收江邊骨 (사거수수강변골)
 
(右二首 所收 西浦 全集 卷二)
 
매서운 북풍이 대밭으로 불어드니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네 생각 간절하구나
먼 남쪽으로 유배되었다니 그 마음 얼마나 아팟으리요.
슬프다. 너마저 남쪽 바다 끝으로
귀항갈줄 누가 알았으랴.
풍파가 거치른 탓일까 반년이 되도록 서찰마저 끊겼네.
지금 내 병환이 낙조처럼 짙어만 가는데.
죽어 강변에 버려질 내 유골은 대체 누가 거두어 줄꼬.
 
在 南海聞叔姪配絶島 (재 남해문숙질배절도)
 
(其一)
 
蒼茫三島海雲邊 (창망삼도해운변) 方丈蓬瀛近接聯 (방장봉영근접련)
叔姪弟兄分占籩 (숙질형제분점변) 可能人望以神仙 (가능인망이신선)
 
끝없이 망망한 바닷가에
방장, 봉영처럼 이웃한 절경이 아름다운 선경같아서
내 숙질간 서로 흩어져 낙도에서 귀양살이 하고 있건만
남들은 그 정 모르고 신선놀음이나 하는듯 알겠구나.
 
(其三)
 
多至
萬木森森凍欲催 (만목삼삼동욕최) 海風終夜吼成雷 (해풍종야후성뢰)
燈前有客讀周易 (등전유객독주의) 地低微陽回未回 (지저미양회미회)
 
만목이 앞다투어 얼어드는데
무심한 해풍만 뇌성처럼 밤새 우는구나.
등잔 앞에 홀로 앉아 주역을 읽나니
한번 흘러간 세월은 돌아올 길 없도다.
 
(其三)
 
己巳年 九月 二十五日 (기사년 9월 25일)
 
今朝欲寫親 (금조욕사친) 語字未成時 (어자미성시)
淚已滋度濡 (누이자도유) 毫還後擲集 (호환후척집)
 
(右三首 所收 同卷 六)
 
아침에 노모에게 글월 드리려 붓을 잡았으나
미처 글을 쓰기도 전에
너무나 눈물이 쏟아져 내려
붓을 다시 놓고 마는구나.
 
 

 
 
南九萬의 配所詩 (남구만의 배소시)
 
 
 
 
숙종조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으로 있을 때 남인을 탄핵하다가 남해에 유배되었던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은 망운산과 금산을 탐승(探勝)하고 그 절경에 심취되어 각각 한 수씩 시가를 남겼다. 망운산에 올라서는 평화로운 우리 고장의 아름다움과 복됨을 보고 향수(鄕愁)를 느껴 읊은 시이고 하나는 금산의 선경에 탐익(眈溺)되어 읊은 것이다.
 
 
題詠登望雲山 (제영등망운산)
 
捫蘿攀石上淨嶸 (문로반석상정영)  爲惑玆山寓此名 (위혹자산우차명)
莫是堯民懷聖意 (막시요민회성의)  非玆子應親情 (장비자자응친정)
高飛白遠迷鄕井 (고비백원미향정)  一朶紅通隔錦城 (일타홍통격금성)
更有滄溟浮點影 (갱유창명부점영)  隨風何日向西征 (수풍하일향서정)
 
넝쿨을 휘어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산정에 오르니
과연 망운이란 이름이 잘 붙혀졌음을 알겠구나.
백성들이 성은을 입어 요민 못지않게 행복함을 보니
이 천한 몸도 몹시 고향땅이 그리워지는구나.
마음은 구름을 타고 고향하늘을 맴도니
금성의 일타홍이 그렇구나.
끝없는 바다에는 섬그림자 아롱진대
이몸 언제나 그리운 고장으로 돌아가게 되려나.
 
 

 
 
題詠登錦山 (제영등금산)
 
浮海山還育 (부해산환육) 尋眞字欲無 (심진자욕무)
菴深雲共宿 (암심운공숙)  烽逈月同孤 (봉형월동고)
石窟笙簫動 (석굴생소동)  岩門蝶蝶糾 (암문접접규)
何年窄九井 (하년착구정)  高頂貫聯珠 (고정관련주)
 
산이 바다에 떠 있는
참된 선경에 이르니 시정마저 잃겠구나.
암자는 깊어 구름과 더불어 잠자고
봉화불만 활활 달과 더불어 외롭다.
석굴에는 음율이 흘러나오고
암문에는 박쥐와 왕벌들이 엉켰네.
몇 년을 두고 이 九井(구정)을 쪼았으랴.
산정에는 연주를 꿰맨듯 기암괴석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