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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 2021 ] 제3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1.11.19

조회수122

첨부파일

◈ 제3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

유의향과 남해문견록
남해 문견록은 조선 후기 후송 유의양(1718~?)이 국문으로 지은 필사본 유배기행록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다. 작가는 영조 47년(1771년) 2월 그의 나이 54세 때 남해로 귀양 가서 6개월을 지내고 돌아와 이 글을 지었다고 하는데, 표제는 '남해문견록', 내제는 '남ㅎ ㅓ문견녹'으로 되어 있다. 유의양은 영조 39년(176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언관으로만 여러 벼슬을 지냈고, 남해에서 6개월의 유배 생활을 한 후 영조 51년(1775년)에 재 등용되었다. 남해문견록은 필자가 영조 47년 2월 노량 나루에 도착하면서부터 귀양이 풀렸다는 소식을 들은 7월까지 유배지에서 겪은 사실들을 국문으로 기록해 놓은 풍물기이다.

주요내용은 노량나루와 이순신, 남해읍의 마애비, 친분이 있는 유배객과의 만남, 금산의 아름다운 경지, 남해섬의 물산, 섬사람들의 생활풍속, 효자 이성삼과 열녀 김연대 이야기, 남해지방 토속어, 여거사들의 폐단, 교리 유언호와의 교유, 육지의 남자들이 본처를 버리고 이 섬에 와서 현지 여자들과 새살림을 차리는 나쁜 풍습에 관한 이야기, 하동에 산다는 동성인 유씨들의 선물이야기, 지은이의 벗 사귀는 철학 등이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산문 유배 기행록 가운데 국문으로 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 뿐만 아니라 당대 유배객들의 생활상 및 동시대 남해 사람들의 삶과 풍속,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요 물산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되며, 남해의 방언과 서울말을 비교하여 소개함으로써 국어사 적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남해문견록에 기록되어 있는 남해 지역의 풍속들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으로 기술한 작가의 태도가 일반백성들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학자의 편향적인 시각과 함께 남해섬에서 경험한 불편한 심기로 인한 부정적 관점에서 이 글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고자 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