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남해문화원 사업

Home
남해문화원 사업
남해학 연구

[ 2022 ] 제4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2.11.30

조회수122

첨부파일

◈ 제4회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학술포럼 ◈

남해의 유배객 유교리

귀양살이 이후에 아무 데 사람이 와서 만나보고 싶으니 한번 뵈옵시다 하여도 내가 사양하고 아니 보았으되, 우리 동성 유씨들이 진주 하동에 사는 서너 사람이 결코 섬 속에 오는 일이 드물기에 그저 보내기 어려워 보아 대접하여 보냈더니, 하동 사는 유생이라는 이가 또 와서 보기를 청하되, 저희 성의 본관이 문화요 전주 동종이 아닌지라 못 보아 보내니 박절히 여기더라. 

하동 사는 동종 몇 사람이 와서 보고, 홍합과 고사리를 가져와 받기를 간청하기에 마지못하여 고사리를 받고 홍합은 도로 주어 보내니, 다른 사람이 묻거늘 내 이르되. '그 사람의 집이 물가가 아니고 지리산 밑이니 홍합은 사온 것이니 받지 못하고, 고사리는 동산에서 꺽은 것이니 받았으되 안심되지 않는다' 하니. 대답하되, '고사리는 중국의 은나라 충신 백이 숙제도 먹었습니다' 하고 대소하였다.

유교리가 머무는 곳에 같이 앉아 있었더니 마침 유고리가 간평신(편지)이 오니 본 후 이르되. '가중은 무사하거나와 빚도 얻지 못하여 조석이 어렵다 하였으니, 오배(우리들의) 가난이 어려운지라 노형을 이전 범범히 알았기 가난한 줄 대체만 알고 자세히 모르거니와 그리 심히 어렵지는 아니한가' 하거늘, 내가 대답하되. '나는 시방 서울과 시골에 집이 없어 동서남북으로 남의 집을 빌어 다니니 옛사람의 시에 '명년에도 또 어는 곳에 있을 줄 아지 못하여라'라고 한 말이 짐짓 내 형세로라'.

수년 전에 광주 팔곡에 가 있을 때에 양식이 없기에 관대를 팔아 장에서 보리를 사다가 노처가 손수 방아를 찧어 밥을 지어 놓고 웃으며 이르되 '원 지내고 급제하였으되, 가난이 점점 더하여 이젠 못 먹던 보리밥을 억지로 자신다' 하거늘, 내 절구 한수를 지으니 시에 이르기를.

조복 팔아 보리를 바꾸어 돌아오니

거친 부엌 사흘을 가히 요기하리로다

뫼 아내는 생계가 졸함을 웃지 말지어다

열 섬이 많은 때에 일이 그르기 쉬우니라

(옛말에 전사옹이 보리 열 섬을 더 장만하면 아내를 바꾼다 하였기에 그 말을 일컬음이다)

'이 글을 지어 놓고 한 집안 온 전체가 대소하였으니 이 한 글에 형세를 족히 알리로다'하니, 유교리가 듣고 이르되. '안빈하던 일이 좋거니와 글과 말이 다 좋습니다'하고, '일기에 베껴 집에 가 노친께 뵈려노라'하니 웃고 지내니라. 유교리가 이따금 왕래하여 담소할 때에 날더러 이르되. '이 시절 친구 사귀기 어려우니 어떤 사람을 취하시뇨?' 하거늘, 내가 대답하되. '내 성품은 남과 달라 벗 구하기를 부귀가 극진하여도 취하지 아니하고, 문장이 이름나도 취하지 아니하고, 언론이 추상같아도 취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 집안의 효우 행실이 내게 도움이 되고 배울 듯하면 사귀노라'하니, 유교리가 썩 좋은 말이라 하고 그 거관하는(벼슬살이하는) 도리를 의논하다가 내가 말하기를, '어느 벼슬을 조심 아니 하리오마는 만일 의주동래 원이거나 관서 영남 감사거나 혹 남북사신이거나 이런 벼슬들은 타국에 상교하매 다른 벼슬과 다른 까닭으로 더욱 율기(자신을 단속함)를 청백장엄(청렴함을 강직하고 엄격하게 하여)히 하여 다른 벼슬보다 십 배 조심할 것이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타국이 가볍게 여김이 이 편 한 몸뿐만 아니라 조정에 사람이 없는가 여기기 쉬우니라' 하니. 유교리가 대답하되. '이 의논이 더욱 좋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