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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학 연구

[ 2024 ] 바람의섬,유배의섬,문학의섬 노도

작성자남해문화원

등록일25.09.24

조회수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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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는 남해군에 속한 79개 섬 가운데 하나이지만, 단지 많은 섬 중 하나만은 아니다. 우선 노도는 남해에 셋 밖에 없는 유인도 중 하나이고, 1689년 남해로 유배를 와 한글소설 <구운몽> 과 <사씨남정기> ,비평집 <서포만필> 등을 쓴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김만중이 노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는 문헌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노도에는 오래 전부터 '노자묵고할배' 등 관련 설화와 허묘. 초옥 등으로 전하는 유적도 남아 전해 신빙성을 떠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도에는 김만중이 유배를 오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몇몇 문중이 이전에 노도에 정착했다는 전언도 있고, 노로 만들기 적합한 나무가 많아 이름이 '노도'가 되었다는 지명 전설을 보더라도 설득력을 지닌다. 사람이 살고 난 이후부터 노도는 작은 섬이지만, 앵강만의 길목을 지키면서 밭을 갈고 고기를 잡으면서 주민들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 

한때 노도에는 상주한 주민이 150여 명을 넘었고, 지금은 폐교한 노도분교에도 4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배움의 터전을 일구었다. 그러나 이번 세기에 들어 남해군 전체가 그런 것처럼 인구는 급속도로 줄었고, 주민 역시 20명을 넘기기가 버거워졌다. 젊은 사람은 떠나면 돌아오지 않아 주민 대부분이 초고령층을 차지하니 마을의 존폐 위기까지 걱정할 형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김만중의 유배 사실에 근거해 '노도 문학의 섬' 조성 사업이 시행되면서 노도는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김만중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과 볼거리가 들어서고,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시설도 갖춰지면서 노도는 잊혀져가는 섬이 아니라 새롭게 주목받는 섬으로 조금씩 탈바꿈했다.

아직 그 효과가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가 본 노도는 확실히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외지로 나갔다가 다시 귀향하는 노도 출신자들도 더러 나오고, 생판 타지 사람들도 들어와 살기도 한다.숫자는 많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힐링 귀촌'의 최적지로 노도가 손꼽힐 듯도 하다.

이런 노도가 '섬 안의 섬' 사업에 선정되었고, 노도의 생활사와 문화사, 인물 등등을 두루 소개하는 책자의 집필을 맡게 되었다. 나는 작년 4월과 5월 노도 안 작가창작실에 입주해 지내기도 했고, 남해로 온 이후 열 차례도 넘게 노도를 찾기도 했다. 그래서 노도에 대해서는 제법 안다고 나름 자부했는데, 책임을 맡으면서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자만인 것을 깨달았다. 작은 섬 노도에는 이야깃거리가 널려 있었고, 노력은 했지만 다 쓸어 담기에는 아쉽게도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다.

어쨌거나 이제 원고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책으로 내게 되었다. 좀 더 좋은 책으로 만들고자 사진작가 이열 선생을 모셔 촬영을 부탁했고, 남해마을미디어 대표 임병훈 님에게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부탁했다. 또 화가 최예원 님은 멋진 표지 그림을 그려주셨다. 멋진 사진과 생생한 동영상, 그리고 그림이 글의 부족함은 메워 주리라 믿으며 세 분께 감사드린다.

원고를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뭐니 뭐니 해도 노도에 살거나 노도 출신으로서 번거로운 인터뷰에 응해주신 노도 주민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연로해서 기억이 희미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옛 추억을 되짚어 알려주셨다. 남해군청 이미숙 기록연구사님은 노도와 관련된 다양한 통계자료를 제공해주셨다. 또 남해교육청의 최현미 선생님은 노도분교 관련 사진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지금은 남해문화원장이 된 당시 남해문화원의 김미숙 사무국장과 문화원 관계자들에게도 행정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밖에 편집과 출판 단계에서 번거로운 일들을 잘 처리해 주신 도서출판 보고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분명 부족할 것이지만, 다시 출판할 경우 보강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책이 소기의 목적대로 '노도 알림이'의 첨병이 되기를 빌어본다.
2024년 11월
임종욱 쓰다